우리 교회에 올해 표어가 새로이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사랑 이웃사랑 입니다
표어처럼 올해는 좀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침에 교회를 향해 달려가는 길이 이렇게 뻥 뚫렸습니다
신호를 한번도 안걸리고 교회도착하는데 10분밖에 안걸렸습니다
아내와 둘이 서로서로 주거니 받거니 예배중에 옆구리를 툭툭칩니다 아내가 졸면 내가 툭!! 내가졸면 아내가 툭 !!
서로 의리있게 눈치안채게 깨우지만 우리둘만 보는 예배라 목사님께서 눈치를 챘겠지만
우릴 잠재우는것도 하나님이요 우릴 잠들게 하는것도 목사님이니 누구를 탓하겠습니까요
사실 주일 1부예배 9시반을 맞추기가 엔가이 부지런하지 않으면 사실 힘들거든요
토요일 퇴근해서 씻으면 거의 1시 그때부터 빈배채우며 테레비 보다보면 두시가 넘어 버립니다
나도 새벽에 일어나 아내 머리 드라이기로 말려야 되고 웨이브를 넣어서 다시 찌지고 머리손질에 시간 많이 갑니다
1부예배가 첨에는 여러명이 되서 참 좋았는데 다 떨어져 나가고 우리둘 우짜다 두명더 그나마 더해준 두명도 성가대
연습한다고 중간에 나가 버립니다
하지만 우리의 지금이 있게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늘함께있어 감사한 나날입니다
시온떡집 사장님 ~~!! 여기 차타누가 인데요 매달 할머니들께 떡해다주는 사람인데요~
내일 아침에 갈테니 예전과 똑같이 떡 포장해주세요~~감사합니데이~
월요일 아침 레스토랑에 들러 우리가 좀 늦게 돌아와도 직원들이 문따고 들어와서 장사준비 할수 있도록
단도리 해놓고 열심히 아틀란타를 향해 밟아 재꼈습니다
아따~떡집 사장님 수도없이 해다날린 떡인데
오늘도 지난번과 다르게 포장 주문할때마다 다르게 포장
나보다 훨 젊은데 기억력은 별로지만 떡만드는 솜씨는 일류라 감사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올때 떡맛은 못봤지만 한인마트 들러서 풀빵이라도 싸먹어야 겠다 맘먹었습니다
다 낡은 손수레에 연탄불 화덕
밀가루 반죽 부어주는 양은 주전자
팥 앙금 한술넣고 갓 구운 고소한 풀빵
싱글 벙글 웃으시는 아저씨 보며
옷소매 반지르르 콧물범벅 아이들
남는 풀빵 나눠줄까 기다리는 개구쟁이
백원에 열개주던 그 풀빵이
수십년 세월뒤 생각 나지만
지금은 그맛 볼수없는 추억입니다
어머니가 사다주신 풀빵 봉지에
우리 남매 모여서 나누어 먹고
서로 보며 밝게 웃던일이 생각납니다
어머니가 장바구니 뒤적이시면
무엇이 나올까 서로가 궁금하다가
먹을것이 안나오면 실망도 하고요
부모님 은혜로 무탈하게 자라서
이제는 각각의 자식들 키워보니
부모님의 큰 언덕이 새삼 그립습니다
풀빵 먹던 우리 남매 제 가정 지키며
서로가 사는 모습들 다르기도 하지만
언제나 그립고 보고싶은 우리 남매 입니다
형님아 누님아 풀빵 생각 나는데
부모님 사시던 칠곡 고향집에 모여서
우리 남매 돌아가며 옛날 이야기 꽃피우자
20몇년전 날씨가 한참 추워져 있을때쯤 모든것을 잃은 슬픔을 끌어안고
배낭하나 딸랑메고 미국에 도착했습니다.
김포공항을 떠나면서 나약한 모습을 보이기싫어
뒤도 돌아보지않고 출국장을 나갔습니다
주머니에 든돈 3000불을 만지작 거리면서 떠나는 제마음은
패배자의 심정같은 그런 입장이었으니까요
언제다시 이땅을 밟아볼수 있을지 기약도 할수없는 이민 길이었습니다.
미국에 도착한지 일주일후부터 식당에서
하루에 12시간씩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침 9시에 나갔다가 집에돌아오면 밤11시정도 되었습니다
나이가들어 배우는 요리와 쇼가 힘이들었지만 그보다 더한것은
가슴앓이같은 서러움 이었어요
20대 초반 아이들과 함께 뛰어야하는 힘에부치는 일들도 많았으니까요
하지만 내가 힘이들어하면 아내의 마음은 더욱 많이 아플것같아
감추고 또 감추면서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깨끗하지 못한 타올로 땀을 닦으면서 일을 하였고
하루에도 몇번씩 땀으로 온몸을 목욕한 탓인지 몸과 팔에는
땀띠 같은 붉은 얼룩으로 팔은 굽혀지지 않았어요
아내또한 하루에 몇번씩 등골을 타고 줄줄 흘러내리는 땀을 주체하지 못하고
화장실로 달려가 맵시를 정리하고 장군처럼 튀어나와~날보며 아자~~~!!
서울에서 떠날때는 온갖 고생을 할각오가 되어 있었지만
막상 식당 주방에서 고기를 썰고 접시도 닦고 그릇을 정리하고
청소까지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몸은 파김치가 되고맙니다.
미국에 와서 첨 몸담은 레스토랑의 주인이 된지 10수년 가진것이 넘 없어 그동안 번것 톨톨털어주고
벌어가면서 운영하다보니 어려움도 많았지만 둘이서 최선을 다했기에 높은 성장을 이룰수가 있었고
팬데믹 기간에도 하루도 쉬지 않고 문을 열었기에 수많은 단골손님들 그리고 처음오는 손님들 느가있어 땡큐다
소리를 들으며 오늘도 바쁜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동네 차타누가 테네시는 미국에서 가장 살기좋은 도시로 선정된적도 있고
미국에서 가장 성경적인 도시 1위로 선정되어 모두들 주일이면 최고로 깨끗한 옷을 입고 예배당으로 향합니다
예배가 끝나면 일주일만에 만난 정든 사람들과 우루루 우리 레스토랑으로 몰려옵니다
작은 관광도시라 참으로 아름다운 산과 계곡이 있고 자연재해가 없는
해밀톤 카운티의 중심도시 입니다
지난주말 몰려드는 손님으로 대기 시간은 길어지고 일부 손님들은 기다림에 지쳐서 돌아가는 상황
아내와 나는 손님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전자동 시스템처럼 돌아가는데
그 와중에 누군가가 아내를 불러서 하는소리 느가~해밀톤 카운티에서 최고다~~!!
가따나 대기 시간이 길어져서 미안해 죽겠는데 최고라니 미안하기도 하고 넘 감사하기도 하고
이 모든것이 하나님의 축복이고 감사함이라 여기며 오늘도 힘을내어 봅니다
미국에는 40대 초반의 할배와 할매가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내가 보기엔 아직도 새파란데 할매라니 모두가 일찌감치 15살때부터 사고치기를 시작해서 인것 같습니다
어느날 출근한 18살반 웨이타의 목이 양쪽으로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습니다
야~!! 이노무시키 너 일로와봐 목이 그기머꼬 했더니 얼굴이 벌개져서 감추기에 급급합니다
내 어린시절 길을가는 누나들이 목에 스카프를 하고 가면 다 물린것으로 알았던 시절이 있었고
어제 비가 왔는데 오늘도 우산들고 있으면 어제 외박했구나 추측해 보기도 했으니깐요
저 정도 자국이 날정도면 저건 쇳독이다 일반 드라큘라는 저정도의 상처를 입히지 못하는데~~??!!
그렇다면 잇빨 교정기를 끼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드디어 수사에 착수하자..
웨이터와 웨이츄레스의 동태를 사무실 카메라로 살피다 보니 유별스럽게 갑자기 스킨십이 많아진 두사람
15살반 여자 웨이츄레스 그가 잇빨 교정기를 끼고 있었습니다 범인을 검거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조것들이 멀 안다고 ..
나중에는 옥순씨까지 알게되고 그들에게 사랑연습을 하는것은 좋은데 제발 아이는 가지지말라고 당부했다고 하네요
그로 인해 내가 맘속에 걱정이 있었는지 지난밤 꿈에 전망좋은 언덕위 큰 한그루의 나무밑에 옥순씨와 둘이
앉아 있는데 땅에서 수박크기의 살구가 수십개 쏟아올라 나와서 먼 살구가 이렇게도 크냐고 하면서 쪼개어 살구씨를
한웅큼 받아쥐면서 내년에 우리 뒷뜰에 심어야 겠다 하면서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여보~나 지난밤에 태몽을 꾼것같아 하면서 이야기를 쭉~했더니 우리복권을 구입하자 하네요
미국에 와서 한번도 복권을 구입해 본적이 없는지라 됐다마~했더니 잠시후 아내가 백달러를 나한테 주면서
꿈을 팔아라고 하네요 김춘추 시대인강 하면서 백불받고 옥순씨한테 꿈을 팔았습니다
아내는 문희가 되고 나는 보희가 되는 순간 이었습니다
출근을 하면서 주유소에 복권을 구입하러간 옥순씨 처음 구입하는 복권이라 머가어떤지 몰라 가지수대로
구입해서 한웅큼 들고 나옵니다 출근하자마자 전부 복사를 떠달라고 하여 난 삼실에서 복권 복사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고 복사된 복권을 웨이타와 웨이츄레스에게 나눠주면서 당첨되어 들고오면 보너스 준다고 하면서
모두 최선을 다해 당첨시켜라 하면서 지시를 내립니다 결과는 아직 몰라요
난 아내에게 꿈을 판 돈에서 조금 보태어 의자 두개를 구입했습니다
퇴근후 부뜨막에서 시작되는 1차 칵테일 타임(소맥말기)이것저것 음식을 준비하는동안 편하게 앉아
즐길수 있는 빠의자 아주 탁월한 선택을 한것 같습니다
집수리를 시작했습니다
시작을 한지는 거의 한달이 다 되어가는데 일은 몇일밖에 못한것 같습니다
노가다는 노는날이 많아서 땡잡은 직업인것 같아요 비가오면 놀고 비가 그치면 말라야 된다고 놀고
춥다고 놀고 덥다고 놀고 된장~~!! 집외부 물청소에 전 창문 페인트 베란다 난간 나무교체 페인팅 전체 색깔 바꾸고
공사가 끝나면 새로운 옷을 입은 베란다와 애정촌이 기대로 가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