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섹쉬한 배추

히블내미 2022. 11. 4. 22:58

주말 오전에는 항상 직원들과 함께 라면을 먹는날입니다

배가 불러 세상걱정 없으니 라면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어졌습니다

일주일에 세박스 그러다 보니 아틀란타에 가면 라면부터 먼저 구입을 합니다
해서 오늘은 우리나라 라면 역사에 대해서 공부를 해 보겠습니다


우리나라 라면의 생일은 1963년 9월 15일입니다

식량부족으로 절대 빈곤에 처해 있던 1963년9월 삼양식품이 일본으로 부터

기술을 도입하여 '치킨라면'을 선보이면서 시작되었고

그 후 2년 뒤인 1965년 롯데공업㈜ <현재 농심>에서

롯데라면이 생산하면서 국내 라면시장이 활성화되었습니

뒤이어 신한제분의 닭라면, 동방유량의 해표라면, 풍년식품의 뉴라면,

풍국제면의 아리랑라면 등이 생산되면서 메이커들의 난립상을 보였으나

1969년에 이르러 농심과 삼양의 2개사 체제로 압축되었습니다.


1983년까지 농심과 삼양의 2개사의 의해 14년간 주도되어 오던 라면업계에

1983년 한국야쿠르트, 1986년에 빙그레, 1987년 12월에 오뚜기라면이

라면시장에 참여함으로써 현재 5개사가 약 1조 2천억원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현재와 같은 방대한 시장이 형성되게된 요인으로는 당시 식량부족에서 온

'절대빈곤 해소기여'라는 기업인들의 의지와 정부지원의

뒷바침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50년대에서 70년대로 이어지면서 급속한 경제발전에 힘입어 국민소득향상,

이에 따른 레저생활 증가, 영양을 고려한 주식 및 간식용으로

수요가 계속 늘어난 것이 주 요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지난 시월의 마지막밤 퇴근을 할려고 차에 오르다 

옥순씨도 깜짝 히블내미도 깜짝 내찦차에는 노란 러버덕 

옥순씨 군바리찦에는 파란 러버덕이 빽밀러에 올려져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평화와 행복을 나누자고 메시지를 전한것 같습니다

그런 기분이 억수로 좋아서 계란 후라이로 아침을 때우고

 계란이 세판을 들고 행복을 나누어 줄려고 집을 나섰습니다

여러차례 이집저집 나누어 주었는데도 오마이닭의 충성심은 대단해요

울 여신과 함께 가고오고 하는길에 단풍이 을매나 이쁜지 

마냥 좋았습니다

계란이 배달왔어요~~~~

계란이 배달왔어요 ~~~

우리둘이 신났습니다 

똑같이 하는소리 우린 맨날 이런거  저런거 

나누어 주러 다니면 세상 좋겠다 그치여보~~!!하모하모

집으로 돌아와 창을 열어젖히고 밖을 내다보면서

오늘도 소소한 일정으로 바쁘다 바뻐 ~얼른준비해

준비성 하나 끝내주는 옥순씨 

범상치 않은 발가락을 최대한 벌시고 인증샷

조렇게 작은발로 밥도 내두배 먹고 일도 내두배 하고 대단해요

베란다 전체를 붓으로 페인트하는 옥순씨

나는 롤러로 하자 어여 ~여보 응응 빨리 끝내고 싶어 안달하고

롤러로 하면 두껍게 안칠해지고 처삼촌 벌초하듯 되기에 안돼 !! 

결국은 옥순씨 고집대로 바닥부터 난간 전체를 

붓으로 해결하는 옥순씨 난 도망갈 핑개로 레스토랑에 배달올것 없나?

오늘은 없으니 도망갈 생각하지 말고 얼른해요!!에휴~죽었넹

20년이상을 버림받았던 빠의자 옥순씨의 손길로 다시금 

태어나는 순간입니다

페인트 한다고 안쪽 베란다에 것을 몽땅 꺼내 놓으니

전신만신 일거리로 보이는데 옥순씨는 하나씩 변화되는

모습에 신이나서 다음 작업을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바베큐 보조 테이블도 베란다와 같은색으로 바꾸고

페인트가 마르는 동안 뒷뜰 피크닉 테이블에 물청소하는 옥순씨

열심히 청소하고 있는 옥순아~~왜불러~용이오빠~~ 찰칵 !!

완전 명품 노가다 모습이 나오는데 엄청 우스벘습니다

옥순씨만의 테이블이 완성 되었습니다

혼자서 몇일째 꼼지락 대샀터니 햔한 작품이 나온것 같습니다

테이블 기둥에는 동물도 기리넣코 이 테이블을 하나 놓기위해

대 공사를 한것 같습니다

베란다 전체를 페인팅하고 비오면 비가 뿌릴세라 아크릴 투명판으로

아래위로 여러군데 다 막고등등 옥순씨만의 까페테리아

오늘아침 달달한 짝대기 커피를 들고 둘이 마주 앉으니 분위기 좋았습니다

다시 들여놓아 정리를 하고 나니 넘 깨끗하고 좋아서

역시 마누라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말이

맞는것 같습니다

작업이 끝난저녁날 추도예배때 남은 음식과

배추찌짐을 뜯어 먹으면서 소주 한잔 나누는데

여보~고생했떠요~서로서로 위로하고 칭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래전부터 한국에서 뜨는 폭탄주 그리고 소맥

주당들에게 큰인기를 받으면서 연예인 가도를 달리고 있는 

포항 폭탄주 일인자 아지메 그가 말아주는 한방울을 받아먹기위해 

큰입 벌시고 쫘르르르~줄서서 대기하는 모습 세상 촴놔!!였어요

그래서 나도 질수가 없어서리~여러줄 남겨 봅니다

 

때는 소주나라 보해임금 14년.

숙취년... 


백성들이 맥주 반, 소주 반을 실천하며 숙취에 빠져 지내던 어느 날, 
바다건너 양주나라가 각종 위스키 전함을 이끌고 소주나라를 침략하였다! 


위스키의 뒤끝 없음에 방심하던 소주군은 연전연패하니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라. 


금복장군과 시원장군 그리고 무학장군 등이 출사표를 던지고 전장으로 나아갔으나,

적의 높은 알콜도수를 앞세운 파상공격에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허나 소주나라를 구할 뛰어난 장수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성은 이가요 이름은 스리라 이스리장군이라  


전라좌수사로 있던 진로 이스리장군은 경상우수사 국순당 장군이 지키던

원샷성의 함락 소식을 듣게 되었다. 


위스키군의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꼬냑부대의 무술이 아무리 강해도,

브랜디 전사들이 아무리 병을 잘 따도,

우리 소주 병사들이 잘 싸워줄 것이라고 믿은 진로장군은
세계 최초의 두꺼비 전함을 타고 새우깡 화살을 쏘아대며

해전에서 승리를 거두어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니
적군은 안주와 술잔의 보급이 끊겨 고립되고 말았다. 


그러나, 진로장군은 혁혁한 공을 세웠음에도 맥주장군의 모함으로

보해임금이 진노하여 목숨까지 위태롭게 되었는데... 


이때 충직한 선비 안동소주가 상소를 올려 장군의 목숨을 구하였다. 
진로장군은 졸병으로 강등되어 관직 삭탈 당하고

처음처럼 팩소주로 백의종군하였다. 


그 후 진로의 뒤를 이어 삼도수군통제사에 부임한 맥주장군은

위스키군에 연전연패하여 도망가버렸고,
이에 다급해진 보해임금은 진로장군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하니, 


진로장군은 귀신같은 용병술과 다양하고 창조적인 폭탄주로

위스키군을 일거에 섬멸하여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그러나 마지막 전투 도중에 적이 던진 병따개에 맞아 소주를 줄줄 흘리며,
 이 말을 유언으로 남기며 장렬히 전사하게 된다. 


으으~~~~~~~~~~~~~~~~~~~~아지메~에에
여기~~~~~~~~~~~~~~쇠주 한병더~~쇠줏잔에 코박고 꼴까닥!! ㅎㅎㅎ

지난 몇년동안 아침운동을 갈때면 항상 보이는 노부부

단  한번도 손을놓고 걷는모습을 본적이 없는  노부부

그들은 가을단풍보다 더욱 아름다운 모습으로 오늘도 걷고 있었습니다

곱고 희던 그 손으로 넥타이를 메어주던때

어렴풋이 생각나요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에에

 

우리 단골손님 아지메 

어이~아지메 넌왜 은퇴를 안해?

아~울 영감이 은퇴해서 집구석에서 빈둥빈둥해서 

같이 있기싫어서 난 은퇴안해~~아휴~찌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