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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크레딧

히블내미 2023. 11. 22. 06:23

지난 두어달동안 아틀란타를 열심히 쫒아다닌 결과 보고와

이민생활을 하면서 일어난 여러가지 일들을 적어봅니다

넘 길지만 나의 기록이 될것같아 포스팅 하나에 기록해 보았습니다

예전에 한번 언급한바 있는 글이지만 부분적으로 생략을하고 다시한번 적어봅니다

이민생활 10년이 넘은 사람들은 거의 누구나 이민생활에 적응하는 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정리하면 소설 한권의 분량이 된다고 합니다.

 그만큼 이민 초기에 어려운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는 이야기라고 봅니다

그래서 히블내미도 거의 25년의 미쿡생활을 장편소설 한번 써볼까 합니다

 

약 25년전 날씨가 한참 무더워 있을때쯤 모든것을 잃은 슬픔을 끌어안고

 배낭하나 딸랑메고 미국에 도착했습니다.

 김포공항을 떠나면서 한국에서의  모든 인연의 끈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나약한 모습을 보이기싫어 뒤도 돌아보지않고 출국장을 나갔습니다

미쿡으로 출발을 하기 일주일전 옥순씨와 둘이서 이동에가서 이동갈비와

막걸리 한사발을 마시고 백운계곡에 올라 돌탑을 쌓아놓고 비나이다~비나이다 하고

주머니에 든돈 3000불을 만지작 거리면서 떠나는 제마음은

 패배자의 심정같은 그런 입장이었으니까요

 언제다시 이땅을 밟아볼수 있을지 !!??  살아서나 돌아올수 있을랑가

기약도 할수없는 이민 길이었습니다

미국에 도착한지 일주일후부터 식당에서

 하루에 12시간씩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침 9시에 나갔다가 집에돌아오면 밤11시정도 되었습니다

나이가들어 배우는 요리와 쇼가 힘이들었지만 그보다 더한것은

가슴앓이같은 서러움 이었습니다

 2~30대 젊은이들과 함께 뛰어야하는 힘에부치는 일들도 많았으니까요

 하지만 내가 힘들어하면 아내의 마음은 더욱 많이 아플것같아

 감추고 또 감추면서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깨끗하지 못한 타올로 땀을 닦으면서 일을 하였더니 얼굴과 팔에는

 온통 붉은 얼룩으로 팔이 굽혀지지 않았습니다

 서울을 떠날때는 온갖 고생을 할각오가 되어 있었지만

막상 식당 주방에서 고기를 썰고 접시도 닦고 그릇을 정리하고

 청소까지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몸은 파김치가 되고맙니다.

그래도 한때는 금융기관 프리렌서로써 한국 최고의 고객보유자

 최고의 예금보유자로써 정부 고위직 사람들에게 표창도 많이 받았고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방송국에서 취재 15분동안 움직이는 은행으로써

 방송 되기도 했던 그래도 한때는 나름데로 화려했던 히블인데

 어려운 고객을 내일처럼 도우다보니 나도 한방에 날아갈줄 누가 알았으며

그때를 회상 해본들 현실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않고 오히려 방해만 될뿐

 현재의 생활이 나의 현실일수 밖에 없었습니다

옥순씨가 매번 내게 하는말 여보~난 진짜 돈 안들어가는 여자인거 알지 ??!!

난 라면하고 김치만 있으면돼 ~알고말고!! 한푼을 아낀다고 포기배추를 싸먹지

못하고 아틀란타 한인마트(창고)에 배추상품 진열해놓은 한쪽 모서리에서

껍데기 찌꺼러기 주워서 집에갖고와 김치 담그고  씨레기국 끓여먹고

옷과 생활필수품은 야드세일 그라지 세일을 찾아다니면서 중고 빤스빼고 다 싸입었습니다

불법체류자 단속이 나오면 큰 냉장고안에 들어가 소스통뒤에 한참 동안

숨었다 나오면 옥순씨 몸은 얼어 있었지만 금방환한 웃음으로 안심시켜주는 옥순씨

그런 옥순씨도 미국 도착 2주후 친정 아버님께서 돌아가셔서 정말 많이도 울었습니다

레스토랑 냉장고에 들어가서 울고 화장실에가서 울고요

그때 울었던것이 평생 울었던것보다 많다고 합니다.

 

말이 쉬워서 이민이지 실제와서 살다보면 한국에서의

 학력과 경력이 깡그리 무시되어 거꾸로 물구나무 서기를 하는 경우도 많고

 군대 짬밥처럼 그전에 한국에서 무엇을 했던 상관없이 이민 생활을

 빡시게 이겨내지 않으면 늘 제자리에 머문다던가 한국서 갖고온돈

까먹느라 부부싸움에 치고받고 뒷걸음질만 할뿐입니다

 때로는 실의에 빠지기도하고 먼 하늘을 바라보며 흐느끼기도하고

 고국이 그립고 친구와 형제간이 그리울때가 한두번이 아니지만

 나 한사람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아내와 가족을 생각하고 다시 현실을 헤쳐

나갈수밖에 없는 것이 이민 생활이기도 합니다.

 

이민 생활이란 산도 물도 바뀌고 이웃사람의 생김새도 전혀다른 실제로 와서

 살아보기전에는 어떻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런 상황입니다

거기에 말도 잘 통하지않고 한국에서 살때는 전혀 불편을 느끼지 못했던

 사소한 일 한가지를 하는데도 내가 이렇게 바보였던가 하는

 느낌이 들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런 생활이 처음 몇년간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입니다

 이민 초기부터 신용관리를 잘하지 않으면 이민 생활을 할수가 없습니다

신용만이 그 사람을 이민사회에서 성공을 하느냐 실패하느냐를 좌우합니다

비지니스에 성공한 중국사람 이젠 제대로된 건물하나싸서 안정을 찾고싶어 

대출신청을 했습니다 거절당했습니다

수십년동안 한번도 쉬지않고 여행한번 가지않은 사람

언제 죽을지 모르니 대출금회수에 문제가 있을수있다는게 이유입니다

한국에 부모님들이 세상을 떠나셔도 갈수없는

 서러움 때문에 가슴을 치면서 통곡을 합니다

 내주위에도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슬픔을 겪을때마다

도와줄수 없는 현실을 슬퍼합니다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은 변화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지금이 아닌 새로운 내일을 기대하는 사람은 기꺼이 변화를 택하지 않을수없고

 변화의 첫번째 조건은 자리를 바꾸는 일입니다.

 떠나지않고 여행을 할수없듯이 낯선 것들을 받아들이지 않고는 변화 될수 없습니다.

변화는 새로운 것을 향한 도전인 것입니다

좋은 변화가 좋은 미래를 만들수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무릎쓰고 국외로 탈출한 월남 난민들은

세계 도처에 흩어져서 월남 국수를 팔면서 또한 스파와 발맛사지

네일샾등 열심히 일하며 행복하고 씩씩하게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옮겨오지 않았다면 오늘이 존재하지않는 사람들이 이민자들 입니다.

 새로운 삶을 찿아 과감히 변화를 추구한 사람들에 의해 세워지고 건설된 미국

그런 이민자들로 인해 뭉쳐진 교민사회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뒤로한채

 오늘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는  히블내미와 나의 여신 옥순씨 

커피한잔에 우리가~남이가 ~!! 건배하면서 화이팅의 날을  시작합니다....

아~서론은 이제그만~지나간 추억은 아름답지만~~!! 남들은 짱나!!

미쿡에 첨와서 이 교회 십자가 밑에서 & 아파트에서 새벽마다

옥순씨는 장막을 달라고 무지무지 기도를 했습니다

우리가 살던 바로 아파트옆에 있었거든요

미국에서의 방한칸짜리 첫 보금자리 월 495달러 한달 생활비 500달러미만

나보다 3개월 늦게 미국에온 옥순씨와 전화통화를 한다고

전화요금 3500달러가 나왔습니다 

국제전화 할인받는 시스템을 하지 않은겁니다

 

미리 알려주지 않고 알까봐 고지서도 두달이상을 보내주지 않은

앙콤한 미쿡넘들 몽땅 물었습니다

회사 이름은 BELL SOUTH 입니다 한참후 그 회사는 사라지고

AT&T가 인수를 했기에 아고~꼬시다 했습니다

 

 

매일같이 하나님께 메달려신분도 자격도 되지않으면서 장막을 달라고 하니

하나님께서도 을매나 황당하셨겠습니까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요~난 아무 욕심 없습니다 물가에 집한체 주이소~장남이라 

방도 여러개 있어야 되고 아이들도 얼른델꼬와야 되고요 주이소 주이소~~!! 

7시간이 걸리는 맴피스 영주권신청으로 인해 지문을 찍으러 갔는데

손가락마다 잡혔던 물집자국 지문을 실패하고 빠꾸당한 슬픔도 한때추억

이민국에서 편지가 날아왔습니다 350일 이후에 히블내미한테

영주권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밤 자다가 벌떡 일어난 옥순씨 세상 몰라라 자고있는 나를 

막 흔들어 깨웁니다 여보~여보~!!얼른 일어나봐봐~!!하나님께서 집을 주신데!!

뒷뜰에 파란물이 있었어 하나님께서 직접 보여주셨어~~!!

엄마한테 이 기쁜소식을 알려야지 하면서 아틀란타 어머님께 전화 합니다

새벽3시인데 아침에 하지 했더니 엄마는 항상 새벽에 찬양하고 

기도를 하시기에 깨어있으시답니다

엄마~엄마~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집을 주신데~~~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엄마의 한소리~~야가~미쳤나!! 김이팍센 옥순씨!!

집을 주신다는 꿈을꾸고 일주일후 자다가 일어난 옥순씨 여보~내꿈에 

작은언니(히블내미 작은누나)가 짐보따리를 막 싸고있어 하네요

날이 밝아오자마자 울 작은누나에게 전화를 거는 옥순씨

언니~언니~날 놔두고 어데 가지마~알았제~~!!

작은 누나의 한마디~울 올케 돗자리 깔았는가보넹!!

사실은 한국으로 발령이 났는데 우리집 너 줄까~~!!??

아직 신분이 안되기에 명의 이전은 안되고 신분이 될때까지 집값을 은행에 

너희들이 갚아 나가다가 나중에 넘겨줄께 ~야호~~!!

집 뒷뜰에 동네빗물이 고여서 하수구로 빠져나가는 웅덩이가 있어요

비가 오는날만 물가에 집한채가 됩니다 ㅎㅎ

미국 공무원인 누나 국방부 보상담당으로 한국 평택 미군기지에서

지금껏 근무하시다가 몇달전 은퇴하시고 플로리다에 계신답니다

약3년만에 누님께서 주신 우리의 첫번째집을 페이오프를 했습니다

나는 요리사하고 옥순씨는 웨이츄레스로 팁을 버는데로 집 원금을 갚아나갔습니다 

외식은 한번도 안했고 쉬는날이면 김밥을 옆꾸리 터지지않게 잘말아서 

왕창들고 나드리를 다녔습니다 멋진풍경에서 즐기는 김밥외식 

질려서 지금도 저는 김밥을  안먹습니다

약15년전 이렇게 눈이 많이 온뒤로는  지금껏 눈같은 눈구경 못하고 삽니다

첫번째집을 페이오프하고나니 옥순씨가 욕심이 생겼나봅니다

여보~우리도 이제 사장님이 되었으니 큰집하나싸서 열심히 갚다보면

그게 나중에 은퇴자금이 되지 않을까요 ??!! 그러지머~이렇게 시작되어

 

집을 보러다니는데 테네시강가 산중턱에 있는 큰 호수가 있는 물가에 집한체

이 집을 보자마자 바로 이집이야~하나님께서 내게 보여주신집이야~합니다

뒷뜰 호수에 팔뚝만한 큰 잉어 여러마리가 헤엄치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집안을 볼필요없다 계약합니다 오케이~~!!

변호사 사무실에서 크로징하고 난뒤에 집안을 구경했습니다

집 주인은 땡잡은 거지요 이것 저것 수리해 달라고 할까봐 먼저 싸인을 하고 

달아나고 없었습니다

집안에 여러가지의 문제도 있었지만 살아가면서 하나씩 고치면 되는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약 1000평의 땅과 연건평 150평정도 주변은 완전 동물원처럼

온갖 숲속친구들이 호숫가로 물먹으러 모여듭니다

갈곳이 없는 한국 유학생들 우리집에 많이들 놀러왔습니다

배낚시도 하고 당구도 치고 가라오케에 바베큐에 참이슬 한잔하고 

집에 갈때는 옥순씨가 김치에 마른반찬 냉동실에 얼린밥까지

바리바리 챙겨주고 기숙사로 데려다주기까지 하는 엄마의 마음이었습니다

옥순씨 말처럼 기도의 동산 우리들의 에덴동산 이었습니다

첫번째집 팔고 받은돈 몽땅 지금집에 다운페이 하고 30년 모게지를 하였습니다

이사와서 수도 없이 많은 날들을 삽질하고 곡괭이질을 하면서 

주변을 다듬고 가꾸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었던 뒷뜰 지금의 모든것들이 옥순씨와 히블내미의 

땀으로 일구어 진것입니다

 

이렇게 이데로 가면 우리의 인생도 무지갯빛 인생이 되겠구나

생각하면서 정말 열심히 열심히 살았습니다

직장생활로 은퇴하고싶은 히블이라서 비지니스와는 좀 어울리지 않는 

성격이었지만 옥순씨 후원의 힘받아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면서 느낀것은 직장상사의 잔소리하는 꼬라지 듣기 싫어서 

흔히들 비지니스 할꼬얌 ~식당이나 할꼬얌 ~요런사람은 절대로 

비지니스를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고객모두가 손님 모두가 직장상사보다 더 배도 뽈록하고

최고로 대접받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남의돈 먹는게 쉽나요 하루종일 웃어야되고 하루종일 참아내야 합니다

그러한 내마음속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옥순씨는 장모님 문제로 급히 2주동안 한국방문 나가고

나혼자 틈만나면 슬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숨어 버리고 싶고  도망가고 싶고 멀리 떠나고 싶었습니다

한국에서 돌아온 옥순씨한테 집도 팔고 레스토랑도 팔고

이곳을 떠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작은집에서 작은돈 벌면서 살고싶다고 했습니다

옥순씨가 당신의 뜻이라면  몇일만 더 생각해보고 그렇게 합시다 

하지만 건강이 재산이니 건강 잘 지킵시다

어데를 가더라도 당신은 내인생이고 내가 평생지켜야할 사람입니다

그 한마디가 정말 무지 고마웠습니다

 

미국에와서 온갖힘든일을 다 겪으면서도  내게 여보~어깨펴!! 까짖년으꺼 !!

우린 할수있어 하면서 용기를 준 옥순씨 생각하니 미안하고 부끄럽고 그랬습니다

그러면서 옥순씨가 내게 한가지 소원을 들어달라고 했습니다

둘이서 매일같이 가정예배를 보자고 했습니다 머뭇거리지 않고 오케이 했습니다

5년전부터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가정예배를 보고 있습니다

3일후에 우리집 오픈하우스 날짜가 잡혔습니다 

집안에 있는 무지무지 많은 가족사진 모두를 벗겨서 감추었습니다

소심한 내성격 A형 오지랍이 엄청 넓은 옥순씨 O형

생태마을(전화를 해보니 동태는 없다고 했슴돠 참고바람) 황창연 신부님의

행복특강을 듣다보면 A형과 AB형 O형 B형 네사람이 모처럼만에 만나서 술한잔하러 갔는데

갑자기 AB형이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립니다 

오지랍이 넓은 O형은 먼일인가 싶어 얼른 달래려고 같이 뛰어나가고

남아있던 A형이 B형에게 아무래도 내탓인것 가토 !!내가 먼가를 잘못했는가벼

혼자 걱정과 고민에 빠질때 B형은 먼 신경을 그래 쓴디야 신경꺼~~했다네요 

가정예배를 끝내고 어느날처럼 스포츠센타에 수영을 하러 갔습니다

한참을 수영하다가 물에서 빠져나온 옥순씨 여보~당신 마음 아직도 변함없어?

당신 진심을 말해줘~? 그래서 주저하던 입을 열었습니다

사실은 나이가 들어서 다른도시로 가면 고생이 엄청 심할것같고

지금 내 심경보다 더 힘든일들이 날 잡아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을것 같아

근데 내 모든것을 당신이 이어받아 나간다면 당신은 충분히 잘해나갈꺼야

배짱하나 끝내주는 옥순씨 옆집전자상가 넘들 내한테 욕한마디 했다가 

혼자서 쳐들어가서 여러명되는 전자상가 직원들에게 사과받고 

메니져한테 사과받고 모두 굴복시키고 개선한 장군 옥순씨

여보~당신 어깨에 무거운짐 다벗어 ~지금부터 내가질께요!!!

예정되어있던 오픈하우스 취소하고 레스토랑 판다는 광고 내리고

집에 돌아가서 가족사진 다시걸고 다음날 회계사를 통해 새로운 법인 비지니스 

LLC로 변경하고 옥순씨에게 비지니스에 대한 모든 서류정리부터 운영까지

몽땅넘겨주고 나니 내 마음 날개가 달린듯 편했습니다 난 일만하면되네 ㅎㅎ

매일같이 예배보고 서로에게 기도를 해주고 이렇게 우린 다시 안정된

날을 보내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중 코로나가 찾아왔습니다

마스크를 구하려고해도 구할수도 없는 입장 벌써 손님 여럿이 코로나로

생명을 잃었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하지만 우린 물러설수가 없었습니다

몇주후 옥순씨가 알고지내던 한국에있는 동생이 언니가 보고싶을때마다 마스크를 

구입했다면서 천여장을 보내 주었습니다

직원들 가족들까지 마스크 나누어주고 손님들에게도 나누어주고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칠때쯤 펜데믹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동네 모든 레스토랑이 문을 닫았지만 우린 아침에 가정예배를 둘이서보고  

출근을 할때면 죽으면 죽으리이다~에스더의 말처럼 조금의 두려움도 없었습니다

물러서면 이대로 끝이라 생각했습니다 겨우겨우 먹고 살만해 졌는데 포기할수가 없었습니다

 옥순씨 이까짓년으꺼 못이겨내 하면서 전직원 챙기면서 테이크아웃을 시작했고 

첫날은 열개 둘쨋날은  스무개  2주후에는 280개까지 나날이 플러스알파  테이크 아웃은 성장 했습니다

이렇게 테이크아웃을 하면서 지내온 몇달후쯤..

다음주부터 다이닝룸을 오픈해도 된다는 기쁜소식이 왔습니다

얼른 배너하나를 만들어서 노란 광고 트럭에 부착해서

큰사거리 모서리에 세워두었습니다

옥순씨는 밤잠을 설치면서 먼가를 디자인 합니다

다이닝룸을 오픈한다고 해도 손님들은 겁에질려 선듯 찾아오지 못하니

우린 손님들의 건강에 최선을 다해야되기에 칸막이를 제작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20개를 제작해서 다른손님들 사이사이를 디바이드 하였고

일부 손님들은 몇개더 제작해서 자신들에게 팔아라고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레스토랑 사장부부가 직접 아크릴칸막이를 제작 해서 

손님들 사이에 설치해준다는 소문이 우리동네에 순식간에 돌았습니다

다른 레스토랑들은 문을 닫았기에 요리사와 직원들은 모두떠나버리고

직원을 구할수가 없어 계속 문닫고 열지못하고 셧다운한곳도 넘 많습니다

 

새로운 손님들이 무지 많이 생겨나고 단골이 되고 문열어줘서 고맙다고 팁도 많이주고

주변에 알고 지내던 많은 손님들이 코로나로 사망하고 먼넘의 세상이 이런일도 다 있나 

싶었지만 정말 최선을 다하는 나날이었습니다

세월이 약이라 펜대믹이 끝나고 나니 우리 비지니스는 약 30% 성장해 있었습니다

펜데믹을 이겨낸다고 007작전을 수행한 옥순씨 내게 찰싹붙더니 여보 나 칭찬좀해줘~~먼데??

30년동안 집값을 갚다가 늙어 죽겠다는 생각에 펜데믹 시기에 조금의 여유만 생기면

은행으로 달려가 집 원금을 갚기시작해서 15년만인 몇일전 페이오프 완전 끝냈어 하네요

완전 대박난 좋은소식이었습니다

옥순씨가 가끔 돈을 어떻게 하고 적금을 어떻게 하고 보험등등 이야기를 할때면 

난 듣기 싫다고 안들으려했고 당신이 알아서 잘하기에 나한테 이야기 자체를 

하지말라고 내귀를 막았거든요

그러던중 옥순씨가 알고 지내는 세상 똑똑한 보험하는 동생한테서 전화가 걸려옵니다

언니~언니가 갖고있는 적금중에 10수년 자동이체로 부은 적금이 상당한 돈이 되었는데

갈아타기 하면 어떨까요? 머라꼬 갈아타기가 머꼬 ??!!하면서 각자 다른머리 굴리는 옥순씨

그녀는 새로운 상품을 권유하고 옥순씨는 이기회에 다른것을 꿈꾸고 있는가 봅니다

옥순씨 내게 먼가 진지하게 상의를 하고싶은가 봅니다

식당 주인 아줌마 옥순씨  IQ 137  한때 금융기관에서 날린 히블내미 IQ 90 선 ㅎㅎ

일은 죽자사자 밥먹는것도 까먹고 잘하는데 머리쓰는 일은 히블내미 체질이 아닌가봐요

여보~당신이 싫어하는 돈이야기를 또 해야겠네요

제가 은퇴계획을 세웠는데요 짧으면 2년후 길면 3년이내입니다

당신 나이도 있고 놀러다니는 것도 시각 .촉각. 미각. 청각이 있을때 다녀야겠어요

우리가 은퇴해서 왔다갔다할 한국의 집은 이미 몇년전에 준비해 뒀습니다 

하지만 이리저리 호박을 좀 굴려보았는데  지금집은 커서 은퇴후에  관리가 쉽지않고해서

아틀란타에 작은집을 하나 구입하고 싶은데 폐하께서 유너하여 주이소 네네!! 

돈은 충분하나 ? 요즘 집값도 두배로 올랐고 이자도 엄청 비쌀텐데 말이다!!

우리집도 두배로 올랐으니 오른것은 당연한 것이고 이자가 지금이 무지

비싸지만 이것이 오히려 기회일수도 있고 몇년후 이자가 좀 떨어지게 되면 

그때 재 융자를 받으면 되니 비지니스할때 페이오프를 생각하고 있씀돠 !!하네요

그리고 펜데믹으로 인해 정부 지원금 좀 받은것을 없다생각하고

모든 주식이 바닥을 칠때 전기차 테슬라 주식을 몇만불어치 싸서 

묻어두었는데 펜데믹이 끝나고 테슬라가 천슬라가될때 몽땅 

팔아서 돈좀 만들어 놓았기에 집싸는데는 아무문제 없어요 하네요

하늘에 떠있는 수많은 구름중에 어느 구름에서 단비가 내릴지 정확하게 알고있는 옥순씨

난 한번도 해본적 없는 주식을 옥순씨가 테슬라 전기차에 걸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난 사실 너무너무 놀랬습니다

미국에서 젤 크다는 전국구 부동산회사에 옥순씨가 전화를 해서 아틀란타에 집을

구입하려고 하니 한국사람이 있으면 소개시켜 달라고 했더니 몇일후 

아틀란타 부동산협회 여성회장이신 조엔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여러개의 집을 사진으로 보내왔습니다

 

쉬는 월요일 다섯시에 일어나 씻고 준비하고 가정예배를 보면서 

마태복음 26장 39절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42절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모든것을 하나님의 뜻에 맏기기로 기도하고 두시간 이상을 달리면서 

계속 찬양을 들으며 따라부르면서 행복한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이집을 선택하고 추진해 주세요 합니다

무지 큰 나무가 지붕을 가득덮고 있었지만 자르면되지 그리고 뒷뜰에 

캠핑카 세울수있도록 덤프트럭 두차정도 흙 갖다붙고 콘크리트 치면되지 ..

주인이 유대인인것 같아서 쉽지 않겠다 생각했는데 몇일후 집수리 문제가 

조율이 되지않아 포기했습니다

이집을 보기전에 땅한평없는 옆집과 다닥다닥한 타운하우스도

이게 우리집이다 계약해 주세요 원조 소개업자가 중국여자라서 

중국사람한테 주었고 이집과 다른집 하나도 맘에 들어 계약할려고 

했는데 둘다 유대인들이라 가상인물을 내세워 가격을 인상해서 손 털었습니다

이외에 여러집을 보면서 느낀것은 조엔씨가 참 성실하고 진심이 가득한분

우리가 모르는 여러부분들을 세세하게 찍어주면서 주인과 딜을 하고

자신의 기준에 맞지않은 집은 고객에게도 만류하는 믿음이 가는 분이었어요

얼른 소개비만 챙기려는 사람들과는 완전 정반대였어요

이번에 아틀란타 집을 보러 수도없이 다니면서 많은것을 배우고 알았습니다

물건을 갖고있는 원조 소개업자가 있고 제2의 소개업자가 있는데

그 사이에 삐끼가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2의 소개업자와 삐끼가 반땡하는거 벼룩의 간을 빼먹는지....

조엔씨 이집이 맘에 드는데 이집으로 해주세요?!

이집이 어데가 맘에 드나요 전문가 입장에서 보면 뒷손이 넘 많이 가는집이고 

요것도 코딱지 만하고 조것도 코딱지 만하고 등등 

그러면서 느낀것은 옥순씨와 나는 여전히 고급스럽지 못하고

촌스러움 그데로구나 크고 좋은집에 살면서 같이 눈도 코도 높아져야 되는데

가장 낮은 자세로 이집도 갼네~ 저집도 갼네~ 고쳐가면서 살면되지였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오케이했던 모든 집들이 말짱 도루묵이 되었습니다 

옥순씨 입술은 물집이 생기고 부르터서  피까지 흐릅니다

다섯시에 일어나 달려가고 급히 돌아와서 저녁장사하고 모든게 넘 

힘드는 과정의 연속이었습니다

(왔다갔다 바쁜 와중에도 아버님 추도예배에 정성을 다했습니다)

 

조엔씨가 우리에게 저를 우째 알았어요?

제가 얼마전 멕시코 칸쿤에 놀러갔는데 바닷가에서 한사람이 저를 보고

어머~저분 머니돈나 유투브에 나오시는 분이네 하기에 자기가 유명해진줄 알았데요

(어머님 산소에 잔듸가 시언찬아서 옥순씨와 함께 다시깔았습니다

약 한달정도 되었는데 요즘 넘 가뭄이 심해서 매일같이 네 바케스씩 물 주러 다닙니다)

 

우린 미쿡부동산 회사에 연락했더니 조엔씨를 소개해 줬어요

우리도 머니돈나를 가끔 보는데 조엔씨 인줄은 몰랐어요

실물이 훨 아름다우시네요 맆서비스 잊지않았습니다

 

단지 네분중에 최대표가 우리와 오래전 같은교회에 다녔고

함께 뭉치고 다닌 맴버라서 관심을 가졌어요

옥순씨가 많이 지쳐있나봅니다

아~집보는거 이제그만 ~잊지못할 그집들도 이제그만~

사랑도 이제그만~~노노 ~사랑은 계속하자~

그래도 힘이좀 남아있는 히블내미가 나설떄인것 같습니다

여보~사랑도 불타오를때 결혼에 골인하고 그 불씨가 남아있을때

자식도 가지는 거란다 그래야 달달하고 따스한 마음을 가진 자식이 

태어나는 거란다

(아틀란타 집보고와서 급히 출근하고 마음이 급한 옥순씨 

차고문이 덜 열렸는데 군바리 빠꾸하다가 와장창!! 했습니다)

 

결혼하고 몇년 금방 가버리자나

어느새 사랑으로 사는게 아니고 그냥 정으로 살게되고

둘이서 밥먹으러와도 대화 한마디없이 서로의 폰을꺼내고

시속 100키로 속도로 손가락만 놀리다가 밥은 투고해서 가는사람 많이 보자나

이왕 시작한거 끝장을 내자 다시 몇개의 집을  보내주면 다시보자 했더니

어제 하나를 보내주었는데 조엔씨가 출퇴근하면서 거의 매일보는 집인데

넘 갼은 집이 몇일전에 나와서 아직 따끈따끈해 여보~하네요

둘이서 핸폰열고 머리맞대고 한번보고~ 두번보고~ 자꾸만 보고싶네~

여보~바로 이집이야~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물가에 집한체

그당시 기도의 크레딧이 아직도 남아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우리에게 주실려나 보다 와~하나님께서 기억력 직이시네 아멘~~!!

조엔씨가 이집앞을 지나다니면서 요런집이 나오면 히블내미님이나 

옥순씨가 참 좋아할텐데 생각하면서 지나다니는데 그저께 싸인이 붙어

자신도 너무 놀랬다면서 크로징 끝내고 함께 식사하면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집도 우린 안보고 계약했는데 아무런 후회 없었어요

이건 하나님의 뜻이기에 계약해 주세요

바로 집에서 바라보는 풍경 작은 비치도 있고 집 앞이 클럽하우스라서

주차장과  바베큐시설 연회석에 끝이 보이지않는 넓고 큰 호수 정말 넘 좋아부러요

날마다 커피잔들고 나와 비치에서 선텐해도 좋겠다

지금집에 옥순씨가 태양열 에너지를 하고 싶어 

회사들을 불러 견적을 받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어찌 아시고

태양열 주택으로 주셨습니다

한달 전기요금이 월 30~50달러  정도 나온다네요

대지 600여평에 연건평 60평정도  지금집이 150평 정도에 비하면

넘 적지만 우리가 은퇴하면 요런 사이즈가 관리하기에 딱이고

은퇴해서  살게되면 차고를 크게 리빙룸으로 개조하고 

뒷뜰에 차고를 만들어야겠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왼쪽으로 5분거리에 무지큰 파크 풋볼장 축구장 온갖 스포츠시설이 완비되어있고요

오른쪽으로 5분거리에 한인들이 무지많이 찾는 맥 다니엘파크가 자리잡고 있고요

한인들이 20여만명이 산다는 둘루스 한아름마트 바로뒷편이 우리집

5분에서 10분 거리에 대형 한인매장이 10여개가 있어 주변한인상권에 없는게 없습니다

드디어 크로징 하는날  새벽 5시에 일어나 씻고 예배보고 아틀란타 달려갔습니다

멋진집을 소개해주신 조엔님 그 옆에 대출담당 리사님 그옆에 나의 여신 옥순씨

한국사람에게는 한국말이 넘 잘 어울려서 아무런 문제없이 크로징 잘했습니다

국민의 힘 전 대표 이준석씨처럼 한국인에게 서툰영어 뽐내다가 

구설수에 올라 댄통당하는 모습 미국뉴스에서도 보았거든요

플로리다에 산다는 셀러자매 미국에서 태어났는지 모든것이 유창했습니다

부모에게 물려받았고 아버지 혼자 살았는데 은퇴하시고 플로리다로 가셨나 봅니다

멋쟁이 한인 변호사님 모두가 열심히 살아가는 위대한 한국인들이었습니다

크로징을 끝내고 다시집을 보러오는데 동네오리들이

호수뚝방 길을 막고 환영인사를 합니다

히블내미님 그리고 옥순마마 우리들의 나와바리에 입성하심을

축하 드립니다 하네요 뚝방끝 오른쪽에 우리집이 있어요

드디어 모든 클로징이 끝이나고 집앞에서 키를 받아들고 만세부르는 옥순씨

 방 4개 화장실 3개 이정도면 손주들이 놀러와도 충분할것 같습니다

그동안 앞만 바라보며 고생한 생각과 서러움들이 한꺼번에 밀려오는지 옥순씨는

달구똥만한 눈물을 멈추지않고 줄줄 흘렸습니다 여보~눈물이 멈추지를 않아~하네요

바라보고 있는 내맘이 엄청 쨘했습니다 

엄청나게 부자들도 많고 상상할수 없이 성공한 사람들도 많지만 

우린 지금의 우리 모습이 가장 행복했습니다

조엔님께서 주신  고마운 선물을 받아들고 행복가득안고 돌아왔습니다

 

마태복음 28장 부활의 마지막20절을 보면

(내가 세상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아멘!!!)

이번일로인해 수고해주신 모든분들께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