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시간들이 아쉬워 앨범을 뒤척이다 문득 떠오르는 지난세월들 사진을 스크랲하고 지나간 많은 글들을 다시 읽어보며 여기저기 짜집기하며 잠시 옛날생각을 더듬어 봅니다
보름날 베란다에서 바라보는 보름달이 유난히도 밝게 느껴졌습니다 미국와서 처음 몇년간 쉬는날이면 동전과 1달러짜리 지폐를 들고 동네마다 기웃거리면서 야드세일을 찿아 다녔습니다 아내는 체격이 크지않아 아이것이나 어른것 모두가 몸에 착착 붙는데 난 어찌그리 맞는게 없는지 아~짱나 하면서도 좀 길고 커도 색이 조금 바랫어도 걷어 입으면서 절약해야 했던 시절 신발부터 머리끝까지 나는 2달러 완성품 아내는 5달러 완성품으로 몇가지 건지는 날은 세상을 다얻은듯 기뻤습니다
뒷산에 오르면 마을정경이 한눈에 보였고 마을 사람들의 움직임도 보였으며 3공단 비산염색공단 사수동 금호강줄기와 건너있는 마을들 외로울때는 뒷산에 올라갔었고 부모님한테 야단을 맞았을때도 울면서 올라갔던 뒷산 지금도 내마음의 고향이 되어 있습니다
뒷산에있는 묘지잔디위에 누워 하늘을 보며 하염없이 상념에 젖기도 하였고 흘러가는 구름위에 미래의 꿈을 실어보기도 했는데 이렇듯 내 어린시절 뒷산은 나에게 무척이나 다양한 역활을 해주었고 그래서인지 지금도 고향을 떠올리면 제일먼저 생각나는 것이 고향마을 뒷산입니다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변해있을까 언제쯤 찿을수있을지 모르는 그래서 더애틋한 어릴때 추억이 듬뿍살아 숨쉬는 고향마을의 뒷산에 올라 친구들과 소주한잔 나누고 싶은것이 나의 작은 소망입니다
제가 살고있는 도시에는 없는것 투성이 입니다 노래방도 없고 한국식당도 없고 찜질방도 없고 한국미용실도 없고 한국식품점도 없고 내가 좋아하는 호프집도 없어요
그러다보니 남자들은 칼출근 칼퇴근 할수밖에 없는 실정이고 보니 한국에서 술취한 남편의 늦은 귀가로 부인과 아이들이 스트레스 받을일도 없고 아침일찌기 일어나 해장국 끓일이유도 없는 우리동네
여자들의 수다장이 없다보니 여인들의 모습속에 인격이 줄줄 흘러보이는 곳이 바로 우리동네 히블이가 살고있는 도시입니다 그러다보니 이곳에서 유학하는 학생들에게는 불편한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오직 공부만을 위해 유학하는 학생들에게는 안성맞춤 박사학위는 따놓은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어디 샐곳이 있어야지요 하지만 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다보면 가장어려운 점은 바로 한국음식 문제라고 합니다 기숙사에서 제공하는 미국음식이 입에맞지 않다보면 자칫 유학생활 자체가 대단히 어려워지고 일주일에 한번정도는 자기가 좋아하는 한국음식을 학교밖에 나가서 사먹거나 해야 되는데 우리동네는 대중교통편도 원활하지가 않고 또 나간다고해서 사먹을곳도 마땅히 없다보니 유학생들의 가장큰 불편사항 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학교 기숙사에서 살고 있는 학생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가장 절실한것은 학교수업을 마치고 기숙사에 들어왔을때 외로움과 심심함을 잘극복해야 되는데 간혹 외로움과 심심함을 견디지못해 인터넷 중독에 빠진다거나 전화에 메달리기도 하고 텔레비젼에 중독되는 학생들도 많다고 합니다
문득 고향 생각하고 마음속으로 상상을 해보니 웃마을과 새터 마을과 새마을 동네가 생각 납니다. 또한 우리마을 앞에는 조그마한 개울이 흐르고 있어 우리 어머님들이 빨래를 하고 더운 여름철 밤에는 아줌마와 처녀들이 아래위를 나뉘어 목감를 했지요
뒷산에 칭구만댕이에 올라가면 대구시가 한눈에 보였으며 보름이면 달불을 놓고 패싸움을 벌이기도 했던 생각이 납니다. 여름철에는 소를 먹이러가고 겨울철 눈오는 날에는 토끼잡으러 가기도 하던 동네의 야산들 ! 꼴짝으로 올라가면 조그마한 못이 있는데 이름하여 꼴짝못. 여름에는 우리가 목감하던 장소였고 겨울철에는 우리의 시갯도 장이기도 했던 그아름다운 못 그곳에는 우리의 추억들이 듬뿍담겨 있습니다
겨울철 어머니와 나무하러 갈때에는 도시락에 보리밥을 가득담아 땀을 딱아가며 나무를 하였고 아버지께서 소달구지를 끌고 올때까지 기다리는 시간들이 얼마나 행복했던지! 초여름 지천 배 터에서 사과를 딸때면 보리쌀 한뒷박으로 바꿔먹기위해 먼길을 오가면서도 한번도 힘들어 본적이 없던때 ! 꼴짝못 옆에 복숭아 밭에서 애추를 따먹다가 들켜서 행기띠기한테 혼나던 아픈 기억도 납니다
겨울철에는 친구들과 눈싸움을 하였고 마을앞 보리밭에서 축구를 하던일 맛대 치기를 하다가 춘만이 이마에 맞아 아지메께 혼나던일 소먹이러 금호강에 갔다가 팔달교에 지나가는 자동차 불빛을 하나 둘 세다가 소를 잃어먹고 혼이 났었고 소풀 뜯으러 갔다가 낮을던져 소풀 따먹기 하다가 빈망태기 울러메고 집으로 왔고 쇠죽을 끓이면서 태권동자 마릇지 아릇지를 들으면서 내가 주인공이 된듯 마릇~~~ 아릇 ~~ 하면서 부지갱이를 두둘기다가 불똥이 튀어 백뿌로 솜바지에 구멍이 났던일 학교에서 차성행이와 싸워 선행이가 코피가 났고 소사님께 불려가 맛있는 강냉이 빵을 얻어먹는것을 보고 차라리 내가 코피를 흘릴것을 하는 생각등 오늘 유별 스럽게 많은 생각이 나는것은 세월을 보내는 아쉬움 때문 일까요.???
누구나 잊혀졌던 세월 속에는 진한 그리움의 진액이 있습니다.
다시돌아가고 싶어도 갈수 없는 세월의 강엔 이루고 싶었던 청운의 꿈과 아련한 추억을 만들었던 사랑 . 질곡의 굽이마다 있었던 거칠은 숨결 등 지금은 아직남아 있는 내 젊은날에 경험없이 보낸 순정 . 밤하늘을 바라보다 흐르는 구름따라 우연히 시선 멈추는 별 에게 한잔의 소주를 건배합니다
지금 나이에 마시는 한잔은 그리움의 술이며 외로움의 술이고 내뱉을곳을 찾지못해 마시는 울분이기도 합니다. 깜깜한 동굴속에서 길을 찾지 못해 헤메다가 털석 주저앉은 한탄의 술.
가는세월 잡지 못하고 계절은 바뀌건만은 못내 아쉬워 비워버린 소주 한병 술이 아니라 내가
인생을 마신걸까.??
얼마전까지만 해도 겨울비라고 했는데 오늘 우수수 내리는 비를 보면서 이젠 봄비라는 표현이 맞는것 같습니다 이젠 봄비가 와서 온대지를 적시고 만물이 소생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겠지요
그래도 요즘들어 약간추운 날씨로 인하여 히블이도 몸살감기 기운이 있는지 이틀째 훌적데면서 장사를할려니 스타일이 구겨지는것같아 마음이 않좋으네요
봄이오는 길목에서 감기 바이러스가 돌아다니고 있으니 얼른 따스한 봄이 찿아와서 히블이의 마음이나 동문님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시골에 살때에는 이맘때쯤이면 안골짝에서 조금더 올라가면 거부지기도 많았고 장작도 많아 나무하러 많이 다닌기억이 납니다 나무를하다 목이마르면 후미진곳에 숨은듯 감추어진 옹달샘이 하나있었는데요
겨울다간 개울은 가랑잎이 소복이 쌓여도 바윗돌 틈새서 방울방울 나오는 물이 오가는이 갈증을 달래는 정말로 맛나는 물이었어요 새봄엔 더욱시원함에 배부르도록 마셨는데 요즘 생수라지만 어디 그맛에 비교나 되겠습니까
남쪽에서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면 돋아나는 쑥과 산나물을 찿아서 동네누나들 하나둘 파란 플라스틱 소쿠리와 짹지칼을들고 나물뜯으로 다녔지요
우리동네 누나들 나물뜯다 목마르면 한모금 마시던 바위틈새서 흘러나오는 물 나무하던 형들도 즐겨마시곤 했었는데 숨은듯 감추워진 그 샘물은 지금도 흐르고 있을까요....
우리는 낮설은 땅에서 고생은 했지만
각오는 하고 왔기에 일은 힘들지 않았어요
둘다 성격이 온화하면서도 강함이 있었기에 잘참으며 살아온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스톤 마운틴에 올랐을때 아내나이 마흔살
미국온지 2년반쯤 되었을때 인것 같습니다
돈도 조금씩 모을수가 있어서
자신감도 붙었고 일을 알기전까지가 힘들었지
일을 알고난뒤 부터는 그냥 꾸준히 흘러 가는것이었기에
아이들 보고싶은것 빼고는 생활이 즐거웠던것 같습니다
항상 함께해주시고 좋은말씀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밤도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그당시는 폼도 잡을줄 몰랐어요
한국사람들은 그냥 있기만 해도 폼이 줄줄 나는데
미국사람들은 길거리 다니는것 보면
모두가 거지같아 보일때도 있어요
특히 제가 살고있는 작은도시는 시골하고 가깝다보니
촌티가 나는 사람들이 넘 많지만 큰도시가면
모두가 멋있는 모습에 놀라기도 한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옷이 좀 크고 남의 옷을 물세탁해서 입어도
좋았던것 같습니다 서서히 익숙해지는 이곳 생활에서
속앓이는 있었지만 둘이었기에 서로 위로하며 이겨낼수가
있었던것 같습니다
더 이상 까먹을게 없었고 행복을 돈으로 쌀수있는 목돈이 없었기에
꾸준히 일하면서 얻은 행복이라 제게는 더 가치가 있는것 같습니다
완벽한 한 가장으로서 서기 까지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것은 혼자만의 힘보다 아내와 자식들이 있기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지 않을까요
단칸방에서.여식 데려오고
큰집 산뒤에 온가족 대려오고
오직 보면볼수록님만이 가능한 일이지요
그만큼 정신력과 가족의 사랑
더구나 없는것 투성인 그 지역의 특성때문에도 성공하는데 도움도 되었겠네요
그리고 보면 위기는 기회라는 말도 맞는가봅니다.
오늘은 보름
모든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갈것입니다.
조건이 취악한 불모지에서의 성공을 진심으로
늘 건강하시고
아침에 스포츠센타에서 스폰으로 음악들으며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는데 카톡카톡 소리에
놀라 폰을 보니 한국있는 큰사위 였어요
딸에게 사위가 청혼했더니 딸이 하는소리가
전북익산에서 서울까지 걸어서 남산에 오르면 받아주겠다고
하더랍니다 딸이 익산에서 간호사로 근무중이었거든요
혼자벌어 자취하면서 직장잡고 결혼까지 한거지요
그래서 둘이서 밤낮을걸어걸어 발이 퉁퉁붓고
물집생기고 끝까지 걸어서 남산 타워에 올라
둘이 결혼에 골인했다는 얘기입니다
아침 카톡에 사위가 하는말
아버님 아탈란타 공항에서 저를 처음 만났을때
아버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이서방 우리 가족이 되어줘서 넘 고맙네
집에서 딸이 아빠를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을거라
생각하니 막 집으로 달려가고 싶은데
아버님은 긴 이민생활 자녀들과 떨어져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아파온다면서
지 아내한테 더욱 잘하겠다는 카톡이었습니다
결혼도 우리가 갈수없어 시집가족친지들과 올렸기에
사위 친구들이 모여 처갓집 얘기하면 우리 사위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 모습에 딸이 많이 미안했는데
미국에 한번 다녀가고는 친구들이 모이면
우리 사위 혼자서 처갓집 얘기 다한답니다
장인 장모처럼 살겠다고요
그래서 지금이 더욱 행복하게 웃을수 있는것 같습니다
그거 아세요?! 두 분의 만면 가득 머금은 미소는 보는 이로 하여금 더불어 입꼬리가 올라가게 만든다는 것을요...ㅎ
요즘 한국은 총선(국회의원선거)로... 취업난 및 여러 사회 현안들로 정신 없이 돌아갑니다.
물론, 미국도 요즘 크게는 대선으로 작게는 이런저런 일들로 바쁘게 돌아가겠지요~^^
앞으로도 두 분의 행복한 가정이 더욱 풍성한 복으로 함께 하길 바랄게요!!
파이팅!!! 입니다. ㅎㅎ
누구나가 닥치면 다할수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일 중요한 우리 둘의 마음이 다치지 않았기에 함께 일어설수
있었던것 같습니다
저는 남자이기에 땀흘리며 요리를 해도 감당할수있는
힘이 있었는데 아내는 가느다란 팔로 서빙을 할때면
무거워서 발발떠는 모습에 마음이 더 아팠습니다
하지만 깡다구가 내보다 더강해서
힘들다 소리 한번 하지않고 일을 즐기듯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할말도 없었습니다
퇴근하면 둘의 팁을 모아 침발라 세어가며
우리집 금고 서랍장 밑으로 던져넣을때 그기분
지금 생각해도 넘 좋았습니다
저희들의 모습을 좋은방향에서 이쁘게 봐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어려움 없이 모두 잘살고 있어요
휘발유나 경유값도 절반 가격으로 떨어졌지만
주머니에 돈들은 없는것 같아요
자기 취향에 맞는 직장 자신을 대우해주는
직장을 찿으며 노력없이 기다리다보면
실업률만 늘어가는것 같습니다
넘 배운 사람이 많은 나라 못배운 사람이 없는나라
똑똑한 사람이 너무 많은 우리나라
그속에서 우뚝서기가 넘 힘들것 같습니다
모두에게 살기좋은 시대가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이민사회는 어느도시나 힘겹게 일하지 않고는 살아가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큰도시는 취미에 따라 함께할수 있는 모임도 많은데
우리 동네는 교회안가면 일주일내내 한국사람 구경을 할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절실한것은 부부가 한마음이 되지않으면
바로 지옥같은 곳이라고 할수있어요
아내의 신앙이 바로서서 힘들때면 기도로써
힘내는 아내를 보면서 저도 많은 위로를 받으면서
살아 왔던것 같습니다
백여명이 모여서 한꺼번에 웃어도
아내가 어느곳에서 웃고있다는 것을 찿아낼 정도로
호탕한 웃음 소리를 갖고 살아 왔기에
지치지 않고 여기까지 올수있었던것 같습니다
은혜가득한 한주 되시길요
님의 미소 뒤에는 얼마나 많은 인내와, 다짐, 배려가 가려져 있을까요?
그래도 님의 강한 멘탈과 두분의 사랑과 믿음으로 수많은 역경을 이겨 내셨습니다!
님의 삶이, 세월이 마치 장고 끝에 뭍어난 시나리오 같습니다
멋지십니다! 아름 답습니다!행복 하십니다...
스톤마운틴에 올라 만세를 부를때 아내나이 마흔살
세아이를 때어놓고 미국생활 시작한지 2년좀더
아이들의 뛰어놀고 있는 모습만 보면 절로 눈물흘리던 아내
하지만 속에 감춰진 무지한 강함이 있어
잘 이겨낸것 같습니다
이곳 레스토랑에서 스폰을 저만해주었기에
아내는 불법체류자로 10년 이상을 아슬아슬하게
살아야했던 세월 제가 시민권자 되어서 아내를
영주권자 만들고 시민권자 만들기 까지
잘 참아 이겨준 아내가 늘 감사하답니다
시민권 선서하는날 그때서야 북받친 눈물을 쏟아내는 아내
그동안 살아온 아픔을 한꺼번에 쏟아내는듯해서
나는 뻘쭘 했답니다
파티했어요 우리들이 승리한 기쁨으로 위하여~~
사진과 함께 올리신 글 뒤 돌아 보시면 언제 이렇게도 빨리 왔나 싶겠지요.
그 길을 오시기 까지 참고 이겨 내셨기에 지금의 보면볼수록님이 계시지 않나 생각 합니다.
온 가족이 함께 생활 하고 함께 할수 있다는 것이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고귀한 행복 아닐까 생각 합니다.
늦은 만학의 꿈 좋은 결실 이루시길 소원 합니다.
늘 행복 하소서....
그당시는 참 힘들었는데 많은 세월이 지나고나니
멋있는 추억이 되어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아픔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지만 모두가 각자의 삶에서
살아가다보니 생각할 겨를이 없는것 같습니다
가끔씩 아이들과 한자리를 해서 소주한잔 나누다보면
얘들이 언제커서 벌써 나하고 술잔을 나누네 생각하면
많은 세월이 흐르긴 흘렀는가 봅니다
어느새 손주가 넷이니 자식들에게 못다한 사랑을 살면서 손주들에
챙겨줄 생각인데 잘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에있는 손주 세명의 유학은 책임지기로 했어요
떨어져서 살아온 세월이 길어서인지
곁에서 함께하는 가족이 더욱 귀하게 느껴집니다
아내는 좋은시절을 몽땅 저한테 바쳤으니 때로는 미안한 마음과 안스러운 마음이 생겨
아플때가 있어요
하지만 지금이라도 공부를 하겠다는 집념이 있어
참 좋은것 같습니다
저희 아내 공부 진짜 좋아하거든요
이세상에서 공부만큼 재미있는게 없다 할정도로
좋아해요 공부방에 들어가면 나올생각을 안해서
제가 자꾸 건수를 만들어 밖으로 댈꼬 나간답니다
배워야 나이가 들어서도 봉사라도 할수있다는 아내의 생각이라서요
이밤도 평안 하시고 행복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어렸을때 갑부는 어떤 사람들일까 부러운 존재라써
만나기 무척힘든 사람일거라 생각했는데
세상이 좋아서 이렇게 미쿡에 살면서 한국 갑부님을
만나뵙는 영광을 얻게 되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누구나 살면서 우여곡절을겪지만 혼자겪으면
그래도 아픔이 덜할것 같은데 아내와 함께 자식들과 함께
모두 나누어서 무거운짐을 져야 한다는게 넘 힘들었던것 같습니다
술도 퍼지도록 많이도 마셔보았고 비가올때면 우째그리
우산을 버리고 싶은 마음이 꿀떡같아
비도 참 많이 맞았습니다
다 소용없었어요 내가 맘을 돌려먹으면 되는것을
아파만 해서는 안되는거였어요
그래서 다시 일어났습니다
행복한 주말 맞이하시길요
제가 살면서 덕분에 란 말을 가장 많이쓰면서
살고싶은 사람이었어요
근데 그게 참 맘데로 안되어서 어려운 시련도 겪으면서
살아왔지만 지금은 알고보니 모든게 덕분에 였어요
그래서 내가 잘나 이세상 사는게 아니고
아내 덕분에 가족들 덕분에 자식들 덕분에
그리고 나를 아는 많은 사람들 덕분에
지켜봐 주신 울님들 덕분에
그리고 덕분에님 덕분에 제가 오늘도 행복할수 있는것 같습니다
나보다 아내와 아이들의 고생이 더욱 심했지만
작은 베품에도 기뻐하는 아이들로 성장했고
아내또한 건강해서 요즘은 세상에서 집이 젤 편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덕분에님께서도 행복한가정 좋은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지금껏 올려주신 사진들과 비교를 해보니
아름다운 사모님의 모습도 풋풋한 소녀 같으시고
보면볼수록 님께서도 이제 막 결혼을 하신 새신랑의 모습같습니다.
많은 것이 변했네요.
예전에는 문화해택을 많이 받지못해
오로지 과장들은 퇴근후 집으로 바로 귀가를 하고
유학생들은 허튼짓을 할곳이 없으니
오로지 공부에 부흥을 하여 박사는 그냥 딸 정도였다니
그때 순박했던 모습을 그려보게 합니다.
송이송이 열린 밤은
한국에 주렁주렁 가을에 열리는 밤송이나 똑같은 모습이네요.^^*
예나 지금이나 두분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이아소님께서 언냐들과 힐을 신고 놀러다닌다꼬 발이 많이
아파서란 소식을 우리동네 신문에 났어요
그래서 발맛사지 잘하는 베트남 칭구를 보내드릴려고 했는데
쨘 하고 나타나셨네요
이젠 갼심니꺼~~
역시 이아소님은 등산화 신은 모습이
젤 잘어울리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울 이아소님 팬이 넘 많아서 몸이 아파도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잠을 아껴가면서 까지 인기관리에 최선을 다하시는
그 마음을 울님들 모두는 잘 알고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까페를 방황하는
방랑자가 아닌 오직 이곳에서 우리들과 함께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의자에 깊숙히 몸을 묻고 하늘을 많이 바라보곤 했어요
때론 별도 세어보면서 어릴때 별하나 나하나 별둘나둘
하면서 옆집 순이하고 참 잼나게 별을 세던 기억
그 아스라한 기억들도 떠올려보면서 수니는 지금 머할랑가
하면서 혼자 피식 웃어보기도 했는데
담배를 끊고 나니깐 밤에 베란다에 나갈 이유가 없어져서
아내한데 여보 나 있자나 담배를 끊고 났더니 달님을 못봐서
감성이 사라지고 있어 했더니 됐다고마 드러가서자소~~
하기에 찍소리 못하고 담배에 대한 미련을 버린지
5년정도 되었습니다
내대신에 아들이 좋은긴줄알고 열심히 빨아샀는데
조만간에 끊기를 바래봅니다
미국와서 첨에는 하루에 세군대를 뛰어다니면서
돈을 벌었어요
아침 7시 좀넘어서 미국회사 출근해서 전직원들
아침에 요가를 1시간 가르키고 또 옷수선집으로 달려가서
옷 수선으로 오전을 보내고 오후에는
레스토랑에 접시 치우기위해 달려오고 그러면서
소원은 웨이츄레스 하는거였어요
돈을 두배로 더 벌거든요
그래서 손님이 앉으면주문 받는 연습부터 정말 열심히 배우고
있는 미소 다하더니 소원도 이루어지고
그래서 지금도 우리직원들이 손님 핸들을 못하면 아내가 나서면
순식간에 해결되는 해결사랍니다
아내는 젊은 시절 추억이 없어요
스무살때 저한테 시집와서 학교도 더이상 다닐수가
없었고 꿈많은 여자였는데 제가 다 망친것 같아 미안할때가 많아요
스톤마운틴에서 만세부르는 아내 그때가 결혼기념일 20주년이었습니다
멀리 갈수있는 입장도 아니고 아탈란타에가서
한국음식점에 가서 갈비라도 실컷먹게 해주고 싶어서 갔어요
세 아이의 엄마 자식두고 어디 그게 잘 넘어가겠어요
할수없이 먹다가 박스에 담아 집에 왔지만
그래도 함께라는 생각에 좋았습니다
밤나무는 저희 이민생활 칭구입니다
아버님 기일이 가까와오면 꼭가서 상에 놓을것을 주워 옵니다
15년 후에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이아소님과 함께 할께요
오래전에 아주 힘이들때 잠시 읽어본 글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가지지 마라
미워하는 사람도 가지지 마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만나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서 괴롭느니....
이 목숨 태어남은
한조각 뜬구름 일어남이요
이목숨 쓰러짐은
한조각 뜬구름 사라짐이라
뜬구름 자체가 원래 없던 것
인생의 오고 감도 그와 같으니
아!아! 이몸은 오래지 않아
다시 흙으로 돌아 가리다
정신이 한번 몸을 떠나면
뼈만이 땅에 버려 지리라
무엇을 웃고 무엇을 기뻐하랴
세상은 쉼없이 타고 있는데
무엇을 탐하고 무엇을 의지하랴
이 세상 모든것은 물거품인데.......
법화경에서
나만 왜 이렇게 힘들게 태어나서 이런 시련을 겪는가
왜 날 낳으셔서 이세상에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 가
참말로 여러가지 생각으로 딱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혼자서는 무서버서 못죽겠고
누가 죽여주면 좋겠다 싶어 비오는날 어두운밤에
광화문 넓은 대로를 가로질러 천천히 건너는데
들려오는 소리 야~이시키야 되질려면 딴데가서 되지지
누구를 사고치게 만드냐고 난리하는 소리를 듣고
이것또한 빙신같은 짓이구나
날 낳고 기뻐하시던 부모님이 확 떠오르고
아내와 자식들 생각도 나고 말씀처럼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까짖꺼 다시한번 해보자 머어~~그런거였어요
하루쉬고 나오다 보니 답글이 많이 늦어진것 같습니다
쉬는날이면 푹 쉬고 싶은데 먼 할일이 그렇게 많은지
종일 바쁘게 보낸것 같습니다
청소회사에서 아줌마 세명이 집에 찿아와 한달에 한번씩 청소를 하는데
처삼촌 벌초하듯 청소를 하는것 같아
가고나면 아내와 둘이서 부족부분을 다시한번
청소하기도 해요
5500스퀘아피트 라써 한바퀴 걸레들고 다니면
순식간에 몇시간이 흘러버린답니다
아내와 저는 매일아침 운동으로 두시간 이상을 보냅니다
그리고 내또래가 별로 없다보니 함께 하는 칭구들이
전부 사십대라써 큰형님 큰형수로 항상 함께하니
생각이 젊어서 그런가 봅니다
이쁘게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두분의행복이고스란이보이는
흔적을보면서내입가에도미소가
타국에서많이힘드시겠지만
두분의흔적속에행복이가득
두분에게격려의박수를보내드립니다
힘내시고고국에두분을응원하는
친구들이있잖아요
파이팅하세요
잘보고갑니다
첨 미쿡에 도착해서 일이없고 아무것도 모를때가
가장 힘이 들었는데 직장을 잡고 꾸준히 하루하루 생활하면서
조금씩 자신감도 생기게 되고 더구나 레스토랑에 일을하니
먹는것 걱정은 안해도 되고 그러다 보니 장바구니가
가벼워져 절약도 할수있고 참 좋았던것 같습니다
둘의 성격이 비슷하여 낙천적인 면도 많아
주방에서 칼질할때고 이정현의 바꿔바꿔 를 크게
틀어놓고 춤추면서 했어요
그렇게 하지않고 고향생각만 하고 있으면
날카로운 칼날에 손이 다치게 되거든요
무엇이든 꾸준히 하면 되는것 같습니다
힘을 보태주셔서 3월의 시작을 기쁘게 합니다
봄과함께 행복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주말이면 새벽에 일어나서 야드세일 그라지세일을
찿아다녔답니다 아내는 발사이즈가 225센치라써
어른들 신발은 맞는게 잘없어서 아이들것 신고했는데
하루는 한집에서 신다가둔것 상표가 그냥 붙어있는것
아내발에 딱 맞는 구두를 열컬레에 5달러에 샀어요
아직도 그 신발의 흔적이 남아있는데
그당시는 로또당첨된 기분으로 좋아 죽을라 했답니다
청바지도 허리가큰 통바지라 겹쳐지고 했는데도
그래도 폼이 갼했어요
녹음기 옆구리끼고 흥얼거리던 시절
당진희망님께서도 추억이 생각나셨는가 봅니다
꽃피는 3월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름다운꽃과함께 좋은시간 많이 가지시길 바라겠습니다
대나무 싹은 틔우기가 힘들지만 일단 한번 틔우고 나면 그야말로 우후죽순
님의 앞날은 이젠 보장이 되어 있네요
행복 하세요
건강 하세요
사랑도 많이 받으세요~
어제는 월요일 아내와 둘이서 하루 쉬는날이랍니다
모두들 일하는 월요일이 쉬는날이다 보니 심심하게 보낼때도 많지만
조금씩 일을 만들면서 쉬다보니
어제도 바쁘게 보낸것 같습니다
좋은말씀으로 댓글주시고 힘과 용기를 함께 선물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3월의 시작이 놀부짱님께서 주신 큰 에너지에 힘받아
기쁘게 시작할수가 있는것 같습니다
그당시는 죽을것 처럼 힘이 들다가도 주변에 보는 사람
아무도 없었기에 이겨내기가 더욱 쉬웠던것 같습니다
이곳으로 떠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당시에는 한국에서 생활 할수가 없을정도로
낙담이 컷기에 차라리 아무도 모르는곳에서
다시 시작해보고 싶은 마음이
뒤돌아보지 않았어요
돌아보면 눈물날것 같아서요
비행기가 이륙할때 그때 기분 아직도 느겨진답니다
놀부짱님 3월이 시작되었습니다
가족과 더불어 행복한 시간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집안 형님과 제가 많이 닮았다니 영광으로
생각하겠습니다
분명 멋있고 잘생기신 분인것 같아요 ㅎㅎ
우리 어머님께서 항상 저한테 모인자리가면
우리 아들이 젤 멋있더라 하십니다
자식 이쁘지 않은 부모는 세상에는 없는것 같습니다
미국온지 강산이 두번 바뀌어 가지만
한국방문 한번도 못했어요
아내는 작년에 장모님이 아프셔서
2주씩 두번 다녀왔는데 전 아직도 계획이 없네요
한때 올린 글처럼 언제다시 이땅을 밟아볼수 있을지
하면써 써내려간 글처럼 아직도 때가아닌가 보다 생각하면서
마음을 내려놓곤 한답니다
재광님 3월도 행복한 시간 되시고
즐겁고 기쁜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세월이 넘 빨라 어느새 3월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겨울내내 움츠려있던 모든 식물들이 서서히
새삮을 튀우는 요즘 저도 올봄에는 텃밭에 무엇을
어떻게 심어서 풍년의 기쁨을 느껴볼까 생각하고 있답니다
해마다 농사를 지어보면서 에이~차라리 싸먹을걸
하는 생각도 여러번 하지만 봄이오면 그 생각을 까먹고 또 심을
걱정을 하고 있으니 그래서 봄이 더욱 싱그럽게 느껴집니다
바쁜시간 다녀가시고 흔적 남겨 주심에
더욱 감사를 드립니다
부족한글 부족한 생활들을 좋은 마음으로
보살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3월도 바라시는 모든 소망 이루시는 좋은달 되시길 바랍니다
어그리 코리안이 되지않고 나이스 코리안이
되고파 오늘도 열심히 예의를 갖추며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민족으로 살아갈께요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한 시간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둘은 머리를 맞데고 궁리한끝에 일주일에 한번은 제가 6인분의 도시락을 만들어주겠다고 아무걱정 하지 말라고 했어요 학생 모두가 좋아라 하는 모습에 꾸준히 챙겨볼 생각입니다." 남자 천사로 인정합니다. 10년간 대학 졸업 목표인 부인, 뒷바라지 잘하시리라 봅니다. 이제 이 부분까지 읽었는데 마저 보겠습니다.
늘 행복하세요. 고생한 부인께 감사한 마음 지퍼를 채워 두셔야 되겠네요. 그런 마음이 있으니 부인과 가까운
학생들 도시락을 챙기는 속 마음이 우러 나오는 것 같습니다. 정말 선하고 착한 부창부수입니다.
난 어쩜 이리도 복이 많을까요
추천이 하나 올라와 있기에 내복에 왼 추천 요렇게
생각했는데 서린마음님께서 제게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셔서 공중에
날아가도록 만드셨습니다
처음에는 글을 몇줄 쓰는것도 쉽지 않은데 머도 질난다고 하더니
조금씩 적다보니 300자 금방 넘어가는것을 보고
야~내가 언제부터 요렇게 말이 많아졌는가 하는
생각도 든답니다
누구는 사랑이란 두글자로 책을 시리즈로 쓰기도 하지만
짜다라 명함에 자랑꺼리 새기고 싶어도
두줄을 못채우는 내가 너무나 많은 좋은 말씀으로 기쁘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꾸준히 학생들도 챙기고 아내도 졸업해서 봉사하는 모습 볼 생각입니다
토요일 아침 레스토랑 사무실에 일찌감치 나와
어제 장사한 서류들을 쭉 훌터 보면서
작년하고 어쩌면 이렇게 똑 같이 흘러갈까
생각하면서 따뜻한 커피한잔 하는 시간입니다
강승호님께서 제게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칭찬해 주시니
기분도 좋고 커피향도 더 달달한것 같아
행복한 마음이 절로 생깁니다
그당시는 그렇게 절약하지 않으면 살아갈수없는
저희들의 형편이었고 몇푼남지 않은 돈을 맨날 세어보고
또 세어보고 눈으로봐도 얼마인지 알겠는데
아내는 자꾸세기만 했어요
그러다 보니 이젠 돈을 계산기로 두들겨야
얼마인지 답이 나오는 세상을 살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지난세월이지만 둘이라서 행복했습니다
어제 하루 쉬다보니 답글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일주일내내 일하다가 하루쉬는날인데
푹 쉬고싶은 생각은 늘 간절하지만 일하는날 보다
쉬는날이 더욱 바쁜것은 저뿐만이 아닌것 같아
위로를 받습니다
어제 하루도 종일 집안일 하면서 볼일도 보고
저녁때가 되어서야 편안한 시간을 가질수 있었답니다
봄이 오는가 했더니 어느새 여름으로 접어드는듯
더운느낌이 드는 요즘입니다
바쁜생활인데도 불구 하시고 흔적 남겨주시고
좋은 말씀으로 기쁨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이제 지나고 나니 추억이 되어
기뻤던일만 생각나는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계절 가족과 더불어 행복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이제막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지만 울님의 닉처럼
곰곰히 생각해 보니 겨울로 가는중이 맞는것 같습니다
바쁘신 가운데 이렇게 찿아주시고 엄지를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지난 세월 더듬어보면 참 막막했던 시절이지만
세월이 사람을 만든다고 이만큼 지나고 보니
웃는 날도 많아진것 같습니다
봄과함께 행복한 시간 좋은 추억 많이 만드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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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동안 참고 절약하며 살아온 세월 보상 받고 이제는 온 가족이 다 모여 알콩
멀마나 좋아요 힘든 내색
항상 보지만 지금에 두분 모습에서 행복한 모습에
제가요 총각시절 사진관에 근무하면서 수많은 모습들 봤지요 지금에 두분은 어느 누구와도 비교가 안되는
행복한 모습이
특히 사모님 모습이 제가 보기엔 천에 얼굴 순수한 아가씨 모습 중년의모습 때론
모델처럼 예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