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연한 봄이라써 인지 출퇴근길이 마냥 행복하고 즐거운 나날입니다
겨울내내 추위를 견디면서 따스한 봄을 기다린 새삮들도 많이 자라나고 텃밭에 풀들도 더불어
자라나서 또다시 풀과의 전쟁이 시작될것 같습니다
그저께는 겨울내내 놀고먹던 잔디깍는 사람들이 찿아와 처음으로 우리집에 잔디를 깍았습니다
그들이 오면 봄이온것이 맞습니다
온갖종류의 꽃들이 다 피어난 요즘 뒷뜰을 내다보면 조동화님의 시가 떠오릅니다
나하나 꽃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것 아니겠느냐
나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느냐고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산이 활활 타오르는것 아니겠느냐
참으로 멋지고 공감이 가는 시인것 같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미투!!가 난리인데 내가 도덕적으로 바로서고
너도 도덕적으로 바로서면
세상 모든사람이 도덕샘이 되지않겠느냐 하는 머 그런거요
아내는 여름만 되면 이렇게 하늘을 보면서 근심걱정 하는 날이 많아집니다
우리 레스토랑이 25살입니다 그러다 보니 곳곳이 노후해서 수시로 손을 봐야되고
특히 에어콘은 한여름에 사람을 부를때마다 몇백달러씩 몇번을 지출해야되는 뜨거운 여름
고심끝에 아내가 큰 결정을 내렸습니다
레스토랑 내부는 거의 완벽하게 수리가 끝났지만 에어콘 문제를 대대적인 공사로 휀을갈고
콤푸레셔도 갈고 조카사위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업체를 선정 오랜세월 고심했던 에어콘을 완벽하게
수리를 끝냈습니다
나에게 한푼의 도움도 받지않고 스스로 결제를 끝낸 아내 내가 아내에게 생일날준 금일봉 속에천불
지난 발렌타인때준 금일봉 속에 2천불 그리고 틈틈히 생활비에서 쪼개고 웨이츄레스해서 번돈을
그만큼 더 보태서 수리를 끝냈습니다
레스토랑 특성상 계속 불을 질러대면서 요리를 하다보니 노후한 에어콘이 아무리 잘돌아가도 쉽게
시원해지지 않았는데 수리를 끝내고나니 맘이 편해서 인지 여름아 인자 와도갼타 입니다
영국 체스터 거리에 아내와 둘이서 통기타 하나들고 낚시의자를 들고 이소라 윤도현이 처럼
버스킹을 하러 갈려고 열심히 돈을 모았는데 레스토랑 수리비로 다 들어가 버렸으니
또다시 열심히 모아서 버스킹을 준비해야 겠습니다
오른쪽 귀위에 손을 올리며 불러봅니다 바람이분다~~~~~ ㅎㅎ
제가 미국에 처음와서 살던 아파트 입니다 한달에 495달러 였어요
왼쪽에 있는 3층 한칸 아파트 아버님 제사를 모실려고 상을 차려놓고 절을 할려고 하니
좁아서 엎드릴수가 없어 쇼파를 통로로 꺼내고서야 절을 할수있었습니다
우리 레스토랑까지는 걸어서 5분거리 나도 접시 치우고 아내도 접시치우고 진급해서 나는 요리를
배웠고 아내는 웨이츄레스를 배워 수입이 두배로 늘었습니다
일이 끝나는 밤11시 아내와 저는 밤나무있는곳으로 달려가서 야심한 밤에 나무를 흔들어
밤을 송이채로 쓰레기 봉투에 담아와서 날이세면 베란다에서 밤을까면서 행복해 했습니다
밤을 깔때면 외로움도 없고 고향에서 명절을 맞이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밤나무가 우리의 이민 초창기에 많은 편안함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러다가 밤이 없을때는 배를 만들고 또 레스토랑에 걸려있는 등을 아내와 둘이서 만들었습니다
나무를 싸서 자르고 사각으로 맞추고 플라스틱 맑은 유리를 잘라 붙히고 근사하게 등을
만들어 레스토랑에도 선물했습니다 결국 모든게 우리것이 되었지만 그당시 잠시도 쉬지 않았습니다
아파트와 붙어있는 교회입니다
그당시 아내는 야드세일에서 중고 롤러스케이트를 안전장비와 함께 5달러에 구입을 해서
교회주차장에서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아내가 넘어질까봐 나는 따라다니면서 잡아주었고요
그때마다 잠시 쉴때면 십자가 밑에 양지언덕에 앉아 주변 풍경을 바라보며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한참의 시간을 보낸뒤 아파트로 돌아오곤했습니다
이렇게 인연이 되어 한때 한국교회가 깨어지고 나누어질때 아내는 그 충격으로 이 미국교회에
3~4년 다니게 되었고 그로인해 이 교회에 많은 사람들이 우리 레스토랑 단골 손님이 되었습니다
제가 옛날 얘기를 이렇게 꺼내는 것은 우리 조카사위가 레스토랑 광고차량을 빌려갔습니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집을 샀습니다 조카가족이 우리집에 오면 아이가 좋아서 기다가 금방
걷는 모습을 보고 집이 있었으면 아이도 더 좋은 공간에 키울수있을텐데 했거든요
정말로 크게 축하할 일이 생긴겁니다 이삿짐을 옮긴다고 해서요
오래전 우리도 한칸 아파트 살면서 아내는 날마다 기도를 하면서 장막을 달라고 했습니다
때로는 무릎사이에 머리를 박고 때스다가 안되면 펑펑 울었습니다
집이 있어야 한국에 있는 자식을데려 올텐데 말입니다
새벽4시반이면 항상 일어나 기도를 하던 아내 작정기도 45일째 되던날 아내는 작은밥상에
엎드려 그만 잠이 들었답니다
꿈속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너에게 집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다면서 내가 아내를 깃털처럼
가볍게 한쪽팔에 안고서 둘이서 집을보러 다녔다고 합니다
우리집이라면서 베란다에 앉아있는데 뒷뜰에 파란물이 보이더랍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예수님께서 아주 근심어린 눈빛으로 돌아섰답니다
깊이 잠든 나를 깨워서 아내가 얘기해준 그당시 꿈이야기 였습니다
위에 집이 우리들의 첫번째 집입니다 이날 한인들이 우리집에 많이 놀러왔어요
비가오면 동네의 빗물이 우리 뒷뜰 웅덩이에 다고였기에
아! 예수님께서 이 집을 우리에게 보여주셨구나 했는데 알고보니 십년전에 보여주신 집이
바로 지금 집이었습니다 너무 오랜세월이기에 예수님께서 염려하는 모습을 보이신거랍니다
뒷뜰베란다에 진돗개 대물이와 초선이도 키웠습니다
을매나 이쁘게 잘크던지 동네사람들 모두가 부러워 했습니다
얘네들을 댈꼬 동네 산책하던 아내가 넘어져 팔이 두군데나 부러지는 사고로 결국은 한국분이
운영하는 기도원으로 입양을 보내고 그후로는 키우지 않습니다
드디어 작은 딸내미가 미국에 왔습니다
비행기표값과 지참금이 부족해서 가까운 사람들끼리 몇몇집이 계를 모았습니다
그때 함께 1번을 타게 도와주신 분들에게 다시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큰집으로 이사를 해서 아들이 왔습니다
그동안 고생했다면서 멋진 찦차를 선물했습니다
우리집 지붕위에 떠있는 무지개가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장막을 언약하신 증표입니다
꼬맹이 아들이 청년으로 변한모습 모두가 어려운 시간들을 함께 잘 이겨내 주어서
지금의 행복이 있는가 봅니다
큰딸내미도 우리가 미국에서 열심히 살아내는 동안 결혼을 해서 다녀갔고 미국에 사위가
다녀가기전에는 친구들끼리 모여 처갓집 얘기를 하면 한마디도 하지 않던 사위가 미국 처가에
다녀온뒤로 처갓집 얘기를젤 많이 한다는 딸내미의 이야기 입니다
자신도 장인처럼 살고싶다고 칭구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다닌답니다 참 좋은일입니다
참 힘든 지난 세월이었지만 이렇게 하나씩 잃은것을 찿아가면서 느끼는 행복
삶이 민민하지 않고 얘기꺼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모든가족이 완벽하게 미국에서 살아갈수있는 신분을 갖게 되었고
이제는 하늘을 염려와 근심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감사함으로
바라볼수가 있어서 오늘도 행복합니다
주일을 지키면서 하나님 말씀데로 다 살지는 못하지만 지킬려고 노력하면서
기도로써 하루를 맞이할수 있어 좋습니다
아주 오래전 미국에서 성탄절 칸타타를 끝내고
작은누나와 함께 기념촬영한 사진이 있어
함께 올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