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살때 주말의 명화를 가끔보면서 주일이면 가족들이 함께 마차를 타고 교회로 향하던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참 행복해 보인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히블내미는 그당시만해도 무신론자로써 꾸준히 친구들과 동료들과
다른 주님을 찿아 해메곤 했거든요
어머님께서 우리에게 항상하시는 말씀이 세상사람들 모두가 너희들보다 똑똑하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의사도 박사도 사장도 마누라도 모두가 교회를 다닌다
그들은 절데로 손해나는짓을 안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교회다닐때는 분명히 남는장사이기에 다니는거다 그러니까네 니들도 다니라 알았나~넹!!
이렇게 시작된 교회생활 주일이면 한인들과 만나서 수다도 떨고 족구도 하고 한인들과 함께
나누는 주일의 시간이 우리에게 너무나 행복하고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길가다가 한인을 만나면 가장 먼저 묻는말이 어느교회 다니세요? 골프는 치세요?
아내를 교회주차장에 내려주고 차를 돌리는데 아내의 뒷모습이 하도 예뻐서 쳐다보다 교회
주차장에 서있는 전봇대를 들이받아 차가 다 부서진일도 있지만 그것마저도 기쁨이었습니다
둘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고 교회에 부족한것이 있으면 둘이서 쉬는날도 일해서 돈을벌어
교회에 필요한것들을 구입해서 싸다 놓기도 했습니다
오래전 아내와 둘이서 집 차고에서 만든 교회의 입구 간판입니다 둘이서 부족한 재주로 정성을
다해서 만든 간판인데 계속 비가온 탓인지 지난주에 가까이가서보니 물때가 많이 끼었습니다
둘이서 시간날때 와서 깨끗히 닦아야 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항상 주일이면 가족파티를 하러오는 손님이 있었습니다
몇주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지난주에 한사람이 빠진 다른가족 모두가 점심을 먹고가면서
나에게 자신의 여동생이 죽었다고 하면서 현관 저위에 붙어있는 가족사진을 보관하고 싶은데
좀 뜯어주면 안되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사다리놓고 올라가 조심스럽게 뜯어주는데 사진을보던
남편이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습니다 나도 울뻔했습니다
아내와 저는 운동을 끝내고 낮 12시쯤 아점을 먹기때문에 저녁 장사 할때쯤이면 출출해서
요렇게 붕어빵을 하나씩 먹을때가 있습니다
새우깡에는 새우가 없고 붕어빵에는 역시 붕어가 없다는것을 가끔 확인을 합니다
아내에게 이쁜 장미꽃을 19송이를 선물했습니다
19살 순정이레요 하면서 줬더니 순정이가 아니고 옥순이라고 하네요
길을갈때 팔장을 끼고 다니길 좋아하고 손잡고 다니길 좋아하고 커플옷을 입고 다니길 좋아하는
아내에게 장미꽃과 함께 커플 자전거를 선물했습니다
한참 자전거를 배워서 재미나게 타야할시기에 계절이 바뀌어서 더 이상 타지를 못했는데
이젠 날씨도 따뜻해졌으니 조만간 커플 자전거를 타고 테네시강변을 누빈다고 생각하니
둘이의 마음이 벌써 달리는 기분납니다
우리집에 손님이 옵니다 작은누나 가족 모두가 오기에 아침부터 집주변과 호숫가를
물청소하고 가족들이 오면 깨끗한 장소에서 편히쉴수 있도록 청소를했습니다
지난 3월 16일 보건소에서 나올때도 안되는데 또다시 점검을 하러 나왔습니다
원래 6개월에 한번씩 나오는데 한달을 앞당겨와서 당황을 했지만 지난번 처럼 또다시 100점을
맞아서 기분이 넘 좋았습니다 인스팩터가 하는소리 전 레스토랑을 기습적으로 점검한답니다
한국에서 작은누나가 오고 플로리다에서 매형이 오시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조카가 오고
스리랑카에서 조카 며느리가 오고 이곳에있는 우리가족이 다 모이고 일제 며느리까지 함께하니
우리가정도 다문화 가정임을 새삼확인 하면서 이틀동안 온갖만찬으로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가족모두가 월요일 아침 떠나고 나니 북적데던 가족의 따스한 향기가 그리운지 아침부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온종일 내리는것 같았습니다
가족을 뒷바라지 한다고 출근도 하지않고 최선을 다한 아내 메니저의 휴가로 3주동안 쉬지못한
우리둘 오랫만에 쉬는날을 맞이해서 가족이떠난 텅빈집에 둘이서 냉동실과 냉장고에 남은 음식을
정리하다보니 랍스타가 깊숙히 파묻혀 있었습니다
아내가 속상해서 아~어쩌나 하고 있습니다 누나 가족이오면 버터를 발라 맛있게 구워준다고
저번에 싸다놓고 까먹었는가 봅니다 아내의 건망증덕에 둘이서 쫑파티했습니다
가족의 향기가 집안에 가득히 남아있어 둘이 잠시 침묵했지만 조카 며느리의 나라 스리랑카를
좀더 알아야 겠다는 마음에 검색을 해서 테레비로 한참 여행하는 좋은 쉬는날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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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의 역사는 기원전 5세기에
인도의 왕자 비자야가 스리랑카섬에 건너와 최초의 싱할리왕조를 세운것으로 시작되며
이 시기리아를 만든 사람은 카사파 1세로 장남이 였으나 어머니가 천출이였던 그는 정실부인에게 태어난 동생 목갈라나에게
위기의식을 느끼고 반역을 일으켜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는 부왕이 숨긴 보물을 찾기위해서 아버지를 고문하여 결국 벽에다
목만남기고 진흙으로 파묻어 죽이는 패륜을 저지르고
후환을 없애기위해 동생을 죽이려 했으나 동생은 운좋게 도망을 가버리고 맙니다.
비록 부왕의 보물은 차지 하지 못했지만, 원하는데로 왕위에 오른 그는 늘 불안했습니다.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 죄책감과 언젠가는 동생이 군사들을 이끌고 쳐들어 올거라는 두려움에 끊임없이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 두려움의 결과로 바위산위에 요새화된 궁전을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이 시기리아입니다.
그는 이 시기리아에 숨어서 날마다 술과 연회로 두려움을 잊으려 했습니다.
그가 스리랑카를 11년동안 다스리던 중 마침내 이웃나라로 도망갔던 동생이 군사들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아이러니 하게도 그는 이 시기리아를 버리고 평야에서 결전을 벌입니다.
그 결전에서 그가 탄 코끼리가 수렁에 발이 빠져 코끼리에서 떨어지고
그의 군사들이 왕이 죽은줄 알고 달아나자 이를 본 왕은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고 합니다.
시기리아에서 유명한 것중의 하나는 그가 죽은 아버지를 위로 하기위해 만든 여인들의 벽화입니다.
천년도 넘은 5세기의 벽화가 아직도 그 빛을 잃지 않고 화려한 모습으로 남아있고
좁은 계단을 올라 정상에 오르면 궁전은 무너져 터만 남아있지만, 바위산 꼭대기에 바위를 깍아 만든 수영장엔 아직도물이 가득 고인채 남아 있습니다.
노예들은 그 높은산꼭대기까지 한 줄 밧줄에 의지하며 목숨을 걸고 물을 길어 올렸다고 합니다.
지금은 아주 유명한 관광지가되어 많은 외국인들이 찾고 있고 특히 스리랑카에서는
한국사람들 인기가 아주 좋습니다
동생의 후환이 두려워 저 높은 요새에 머물면서도 왕궁을 중심으로 빙둘러 깊은 수로를 파고 악어를 풀어 경계를 하였다고 합니다.
자연 암석으로 높이가 무려 300m에 이른다고 합니다.
암벽을 오르기 전 곳곳에 거인 경비병들이 지키던 길목이 있습니다.
지금은 관광객을 위하여 계단과 난간이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암벽 정상부근에 위치한 대리석으로 만든 왕좌....수영하는 왕비와 시녀들을 바라보며 술도 마시고...
암벽 정상에 인공으로 만든 수영장입니다......
암벽 정상에 위치한 왕과 그의 신하들이 머물던 왕궁터....
정상에서 내려다 본 정원과 왕궁터...
그의 아버지가 만든 왕궁으로 가는 길목의 아름다운 인공호수
영혼을 달래기위해 그린 벽화인데 그 오랜 풍파에도 보전 상태가 양호합니다.
암벽 중턱의 경비병들이 지키던 입구만 계단으로 되어 있었고 밧줄을 이용하여 오르내렸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