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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풀빵 & 언제다시 이땅을 밟아볼수 있을지

히블내미 2018. 4. 2. 06:40



다 낡은 손수레에 연탄불 화덕

밀가루 반죽 부어주는 양은 주전자

팥 앙금 한술넣고 갓 구운 고소한 풀빵

싱글 벙글 웃으시는 아저씨 보며

옷소매 반지르르 콧물범벅 아이들

남는 풀빵 나눠줄까 기다리는 개구쟁이

백원에 열개주던 그 풀빵이

수십년 세월뒤 생각 나지만

지금은 그맛 볼수없는 추억입니다

 

어머니가 사다주신 풀빵 봉지에

우리 남매 모여서 나누어 먹고

서로 보며 밝게 웃던일이 생각납니다

어머니가 장바구니 뒤적이시면

무엇이 나올까 서로가 궁금하다가

먹을것이 안나오면 실망도 하고요

부모님 은혜로 무탈하게 자라서

이제는 각각의 자식들 키워보니

부모님의 큰 언덕이 새삼 그립습니다

 

풀빵 먹던 우리 남매 제 가정 지키며

서로가 사는 모습들 다르기도 하지만

언제나 그립고 보고싶은 우리 남매 입니다

형님아 누님아 풀빵 생각 나는데

부모님 사시던 옛날 고향집에 모여서

우리 남매 돌아가며 옛날 이야기 꽃피워요

 

======================언제다시 이땅을 밟아볼수 있을지===============================


이민생활 10년이 넘은 사람들은 거의 누구나 이민생활에 적응하는 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정리하면 소설 한권의 분량이 된다고 합니다.

 그만큼 이민 초기에 어려운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는 이야기라고 봅니다


20여년전 날씨가 한참 추워져 있을때쯤 모든것을 잃은 슬픔을 끌어안고

 배낭하나 딸랑메고 미국에 도착했습니다.

 김포공항을 떠나면서 나약한 모습을 보이기싫어

 뒤도 돌아보지않고 출국장을 나갔습니다


주머니에 든돈 3000불을 만지작 거리면서 떠나는 제마음은

 패배자의 심정같은 그런 입장이었으니까요

 언제다시 이땅을 밟아볼수 있을지 기약도 할수없는 이민 길이었습니다.

 

미국에 도착한지 일주일후부터 식당에서

 하루에 12시간씩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침 9시에 나갔다가 집에돌아오면 밤11시정도 되었습니다


나이가들어 배우는 요리와 쇼가 힘이들었지만 그보다 더한것은

가슴앓이같은 서러움 이었어요

 20대 초반 아이들과 함께 뛰어야하는 힘에부치는 일들도 많았으니까요


 하지만 내가 힘이들어하면 아내의 마음은 더욱 많이 아플것같아

 감추고 또 감추면서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깨끗하지 못한 타올로 땀을 닦으면서 일을 하였더니 얼굴과 팔에는

 땀띠 비슷한 붉은 얼룩으로 팔이 굽혀지지 않았어요


 서울에서 떠날때는 온갖 고생을 할각오가 되어 있었지만

막상 식당 주방에서 고기를 썰고 접시도 닦고 그릇을 정리하고

 청소까지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몸은 파김치가 되고맙니다.

 

그래도 한때는 금융기관 프리렌서로써 한국 최고의 고객보유자

 최고의 예금보유자로써 정부 고위직 사람들에게 표창도 좀 받았고

나의 살아가는 모습을 방송국에서 취재 15분동안 움직이는 은행으로써


 방송 되기도 했던 그래도 한때는 나름데로 화려했던 히블인데

 I M F (임프)가 초반에 나를 한방에 날려버릴줄 누가 알았으며

그때를 회상 해본들 현실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않고 오히려 방해만 될뿐

 현재의 생활이 나의 현실일수 밖에 없었습니다.

 

미국에 살고있는 교포들의 경우 대부분 의료보험이 없이 살아가다보니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갈생각을 못합니다

간단한 수술도 손만 되면 2만불이 넘어가는 비싼 의료비

 하지만 형편에 따라 조금씩 평생을 갚으면 됩니다


 한국은 병원이 의사를 고용하지만 이곳 미국은 의사가 병원을 고용합니다

의사는 사무실을 두고 병원을 선택 진료를 하다보니 치료를 한번 받고나면

보통 계산서가 4~5개가 됩니다


 의사 진료비. 병원사용료. 기계사용료. 대기실 사용료. 입원실 사용료등

 하지만 미국은 일단 사람을 살려놓고 봅니다 계산은 나중에입니다.

 

미국에 살면서 가장 큰벽은 바로 신분문제 입니다 신분이 해결되지않으면

 지출은 배로늘어날뿐만 아니라 자녀들 교육 문제에도 큰영향을 끼치고

 신용이 쌓이지않기 때문에 이민생활이 불안정하게됩니다


한국에 부모님들이 세상을 떠나셔도 갈수없는

 서러움때문에 가슴을 치면서 통곡을 합니다

 내주위에도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슬픔을 겪을때마다

도와줄수 없는 현실을 슬퍼합니다


저희 집사람도 미국 도착 2주후 친정 아버님께서

 돌아가셔서 정말 많이도 울었습니다

그때 3개월정도 울었던것이 평생 울었던것보다 많다고 합니다.

 

최근들어 한국의 국내사정이 좋지않다보니 이민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기 시작했다고합니다

말이 쉬워서 이민이지 실제와서 살다보면 한국에서의


 학력과 경력이 깡그리 무시되어 거꾸로 물구나무 서기를 하는 경우도 많고

 군대 짬밥처럼 그전에 한국에서 무엇을 했던 상관없이

이민 생활의 햇수가 말을 해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때로는 실의에 빠지기도하고 먼 하늘을 바라보며 흐느끼기도하고

 고국이 그립고 친구와 형제간이 그리울때가 한두번이 아니지만

 나 한사람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가족을 생각하고 다시 현실을 헤쳐

나갈수밖에 없는 것이 이민 생활이기도 합니다.

 

이민 생활이란 산도 물도 바뀌고 이웃사람의 생김새도 전혀다른 실제로 와서

 살아보기전에는 어떻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런 상황입니다

거기에 말도 잘 통하지않고 한국에서 살때는 전혀 불편을 느끼지 못했던

 사소한 일 한가지를 하는데도 내가 이렇게 바보였던가 하는

 느낌이 들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런 생활이 처음 몇년간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입니다

 이곳 미국은 크레딧(신용)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민 초기부터 신용관리를 잘하지 않으면 이민 생활을 할수가 없습니다

돈에 관련된 모든것은 절대로 날짜를 어겼어도 않됩니다.

 

내 개인의 모든 근거가 이제부터 새로 쌓이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신용만이 그 사람을 이민사회에서 성공을 하느냐 실패하느냐를 좌우합니다

 현금이 많아도 집을쌀수없으며 현금이 많아서 차를 살수도 없습니다

 누구의 도움없이 나 혼자의 힘으로 새차를 한대 신용으로 구입할수 있을때

 그때가 안정의 시작이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생각할수있습니다

 

미국에 살다보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있습니다.

골프치세요? 무슨교회 다니세요? 합니다 한국에서 골프장 예약을 할때보면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가장 잘 나타내주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어느정도 생활이 안정되면

 가장 먼저 시작하는것이 골프입니다

한국의 몇분의 일도않되는 비용으로 마음껏 골프를 즐길수 있다는 사실이

이곳 교포들이 이민 생활에서 위안을 느끼는

 첫번째 자부심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손님이나 친척들이 오게되면

 골프대접이 최고라고 느끼는 분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날씨좋고 잔디는 말할나위없이 부드럽고 공기 맑은곳에서 라운딩을 하고나면

 정말 골프 치는맛이 납니다.


 한국에서는 아무종교도 믿지않던 사람들도 이민 생활을 하다보면

거의 빠짐없이 교회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일요일에 교회에서 만나 이런 저런 살아가는 이야기와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좋은 기회입니다.


 교회에서 주는 직함이 살아가면서 불리는 이름입니다

집사람과 저를 부를때 모두들 집사님합니다 돈많은 회장님 부인도

 사모님 소리를 절대로 듣지못하며 목사님 부인이나

 전도사님 부인만이 사모님으로 불려집니다.

 

이민 생활의 경우 거의모두가 맞벌이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야 중산층 수준의 이민생활을 하며 살아갈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자들은 직장에서 평생 직장의 개념이 없어지고 난후의 불안감과

 50이 넘으면 월급쟁이로써의 막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또다른 불안감으로 인해


 스트레스 등등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숨막히는 환경

 (요즘 연속극 역전의 여왕 처럼) 도 있지요

 이민사회는 그보다는 나은셈이지요

지역 나름이고 사람의 환경 나름이지만 한국보다는 적습니다


대개 장사를 하다보니 직장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없는셈이고

 장사만 잘되면 큰문제 모두가 해결됩니다

한국 교포들이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일을 하기때문에 다른 나라 사람들 보다

 좋은 집과 좋은 차를 갖고 살고 있습니다.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은 변화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지금이 아닌 새로운 내일을 기대하는 사람은 기꺼이 변화를 택하지 않을수없고

 변화의 첫번째 조건은 자리를 바꾸는 일입니다.


 떠나지않고 여행을 할수없듯이 낯선 것들을 받아들이지 않고는 변화 될수 없습니다.

변화는 새로운 것을 향한 도전인 것입니다

좋은 변화가 좋은 미래를 만들수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무릎쓰고 국외로 탈출한 월남 난민들은

세계 도처에 흩어져서 월남 국수를 팔면서 행복하고 씩씩하게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옮겨오지 않았다면 오늘이 존재하지않는 사람들이 이민자들 입니다.

 새로운 삶을 찿아 과감히 변화를 추구한 사람들에 의해 세워지고 건설된 미국

그런 이민자들로 인해 뭉쳐진 교민사회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뒤로한채

 잊지못하고 살아가는 나 히블 오늘도 화이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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