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추억글 보관방

촌님이던 시절

히블내미 2018. 4. 2. 09:47



히블내미가 초등학교 까페를 운영할때

틈틈히 써서올린 글들의 일부를  욜로 이사시켜 왔습니다

이스터데이라 짜다라 바쁘지 않은 장사를 하다보니 틈이나서요






오늘은 갑자기 우리 고향의 들판이 떠올랐어요

지금쯤 모내기한 벼줄기가 많이 자라서



그 푸르름을 한껏 발산하고 있으리라 짐작됩니다.


장사중 농사만큼 많은 이익을 주는것은 없다고 생각한때도 있었지요

볍씨 한알을 뿌리면 싹이 튼후에 거기에서 또 여러포기를 새끼치고 한포기에서

수십알을 열매맺으니 최소한 수백배의 이익을 우리에게 주는셈이지요.

그중에서 가장 많은 이익을 뻥튀기하는 품목은 뭐니뭐니해도 감자 농사인것 같았어요.

감짜 한쪽을 땅속에 묻어놓으면 얼마후에 여러개의 새삮이 나오는데 그 밑에 평균 열개의

큰 감자를 수확할수 있으니 정말 대단 했지요

 

   

 


이렇게 큰 이익이 창출됨에도 불구하고 농사꾼들이 경제적으로 늘 어려운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를 잠시 생각해 봤어요

그 이유는 너무 많아 다 열거하기도 어렵지만.

요사이 한국정부의 정책들이 농민들에게 농사를 포기하도록 유도하는듯 했어요

고향과 일가 친지 등지고 수만리 떠나온 내가 무슨말을 하랴만은

그러다 보면 우리의 고향이 일거에 황폐화될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앞서네요.




무엇으로 판단해 보더라도 농사꾼은 다른 직종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보다도

경제적으로 풍부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농사일이 그래야 할만큼 고생스런 직업이기 때문이지요

농사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일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르겠지만

농사일중에 쉬운일은 단언컨데 단 한가지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잖아요

씨뿌리기, 김메기, 거둬들이기등 일일이 설명하며 얼마나 힘이드는지를 자세하게

말하지 않아도 농사일을 해본 사람은 다 알고요


농사꾼이 아닌 사람에게 하루종일 어떤 농사일이라도 시켜보면 그 다음날이 밝기전에

줄행랑을 쳐버릴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지요

나도 농기구를 금호강에 내빼리고 줄행랑을 쳐버린 사람중에 한명이지만 말입니다

나의 부모님의 숙원(당신들 자식에게만은 농사를 대물림 안하는일) 과 내 줄행랑과

뱃장이 맞아떨어졌기에 소란도 없었고, 미련도 없지만은 농사철이 되면

내고향 들판의 분주함과 풍성함이 아련히 밀려오는것은 어쩔수 없나 봅니다


뒷뜰에 몇포기 심어놓은 고추며 오이, 호박, 토마토, 가지, 들깨 등등이 무성하게

자라 수확하여 반찬을 만들어 먹으며 옛날 어렸을적 찬밥에 물말아서

된장에 고추를 찍어 먹던 밥생각을 하곤 합니다

이맘때쯤 언제나 저녁이면 온가족이 마당에 멍석을 깔고 앉아 옆에 모기불을

피워놓고 모기를 쫓아가며 이야기꽃을 피우며 저녁을 먹었던일 등등

뒤뜰에서 스테이크를 굽고 왕새우를 구워도 풋고추에 된장맛 잊을수 없네요




저녁후에는 울 엄마의 구수한 옛날 이야기를 듣다가 아버지 무릎을 베게삼아 잠이

들어버리면 커다란 부채로 연신 모기와 더위를 쫓아주시던 아버지

'용아, 이제 방에 들어가서 자거라.'

몇번의 재촉하는 말씀을 못들은척 그냥 자는체 할라치면 못이기는척 다큰놈을 안아서

방에 데려다 눕히시던 아버지.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수는 없는게 현실이지만

우리 후손들에게 그런 낭만을 물려줄수도 없다는 사실이 서글퍼 지기도 하네요


온동네를 뜀박질로 헤메다니며 땀이 베인몸으로도 아량곳없이 서슴없이 달려가

아버지의 무릎에 머리를 디밀면 언제나 한결같이 부채질 해주시던 다정다감한

풍경이 새삼 그리워 지고요


뒤뜰 장작불 딱딱 소리를 내며, 뽀얀 연기를 피우면 어린시절 모깃불같은 느낌으로 내 가슴에

향수가 어지럽게 피어 오르는것은 어쩔수가 없나 봅니다

그리운 내고향 칠곡이 떠올라 잠시 슬퍼지는것 같아 그만 할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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